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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Sep 29. 2022

불행을 끊어내는 일이 '불효'인가요?

매일 울던 신규 간호사, 사직 면담을 하고 '불효자' 소리를 들었다.




사직 면담을 하고 난 후 사흘이 지났다. 사직 면담을 한 이후 첫 출근이었다.


오늘 내 듀티는 이브닝 근무였다. 이브닝 근무는 보통 2시 반까지 출근한다. 3시부터 본격 환자를 간호한다. 하지만 2시 반까지 가서 부서의 중요 비품들 개수가 정확히 있는지, 없다면 올바르게 청구가 되었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해서, 나는 오늘 2시 반에 출근하여 이제 막 카운트를 마쳤다.




안 쪽을 들여다보니 부서장님이 안 계셨다.

3일 전, 사직 면담을 하고 다음날 나는 역시나 데이로 출근하였는데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해진 건 단 하나도 없지만, 적어도 우물 안의 개구리는 벗어나겠구나-.라는 생각에 오히려 흐려진 내 미래는 내겐 정작 또렷해진 그림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대학생 때 1년을 휴학한 드문 간호학과 여학생이었다.

보통 국내 간호학과의 경우 타과생들에 비해 대외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에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취업이 더 쉬운 편인지라 휴학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었다. 게다가 나는 여대를 나와서 군대를 가는 남학생마저도 없었다. 하여, 우리 학교 간호학과에 휴학하는 학생은 1년간 모든 학년 합쳐 10명 정도 내

외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학교 동기들은 내가 4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 먼저 병원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야, 상근직이 최고야. 모두가 근무 환경에서부터 조금이라도 덜 예민하게 된다니까? 그러니까 상근직에 있으면 태움도 덜 할 수밖에.."


그래서 좀 더 병원 생활의 실제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태움이 너무 심해서 관둔다고 했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알아?"

1-2년 차의 간호사들이었던 친구들에게 들었던 그 많은 이야기는 대부분 태움과 사직에 대한 이야기였다.



"꼭 관둔다고 하면 작은 실수 하나라도, 혹은 그냥 허당 짓을 하더라도 '관두기 전 마음이 떠서'라고 표현하면서 쥐어짜듯 태운다니까-."







솔직히 나는 지금 실수투성이의 신규 간호사였다. 하지만 이제 사직 면담을 한 상황이라 평소에 밥먹듯이 저질렀던 실수들이 '관두기 전 마음이 떠서', 즉, 일을 대충 하기에 생기는 일들이라고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사직을 한다고 말했던 나는 '그래, 만약 그런 소릴 들으면 그렇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어차피 나는 떠날 사람이니까 그냥 흘려듣자.'라는 심정으로 출근했다.



마음을 편히 가지게 되니 오히려 일이 손에 잘 잡히는 기분이다. 머리가 복잡하지 않고, 마음이 쓰이지 않으니 일이 척척 되는 느낌.

사직 면담을 한 이후로 한 첫 출근.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어쩌지-. 너보다 먼저 육아휴직에 들어간 선생님도 있고 로테이션(부서 이동) 간 선생님도 있어서.. 조금만 더 일해줄 수 있니? 내가 최대한 빨리 인력 채워달라고 말씀드렸어."

부서장님이 내게 와 이야기했다.



문제는 몹쓸 책임감.

"저 대신 들어온 선생님 독립하면 그때 나갈게요."

아니, 순진한 책임감. 그게 문제였다.



 

.

.

.



다음 날이 되어 부서장님은 내게 말을 걸었다.

"어쩌지." 하며, 말을 건네셨다.

"팀장님께 너의 사직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얼른 인력을 채워달라고 말씀드렸는데-,

 너 대신 넣어줄 사람 없다고 하네."





".. 네?.."


".. 팀장님이 너 불효녀라고, 부모님 생각 안 하는 딸이라고 그러시더라."



어이가 없다. 우리 어머니는 '그놈의 병원, 너네 문화는 도대체 왜 그 모양이니? 관둬. 더 좋은 곳에서 좋은 환경에서 일해도 아까울 판인데-.' 라며 관두라고 난리이신데.



그저 나는 , "......" 할 말을 잃었다.




몇 번 말 섞어보지도 못한 팀장님에 대한 혐오감이 커졌다.

그리고 부서장님은 왜, 듣기 거북한 말들을 곧이곧대로 전달해 주시는 걸까-.




"책임감 없다고 너희 부모님은 자기 딸이 사직하려고 하시는 거 알기는 하시냐고

 불효녀 소리만 계속하시더라.

 그런 불효녀 대신해 줄 인력 없다고-."



불효,

부모에게 자식이 늘 우울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더한 불효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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