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는 가장 단순한 소재지만, 공간의 레이어를 결정한다
유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저 투명한 한 장의 평면.
그러나 그 한 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공간은 완전히 다른 레이어를 가진다.
유리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공간을 구획하고 연결하는 감정의 장치다.
벽은 막는다.
문은 여닫는다.
커튼은 흐릿하게 가린다.
그러나 유리는 분리하면서도 연결한다.
공간과 공간을 나누면서도
시선은 자유롭게 통과하게 한다.
유리 가벽 하나로 분리된 침실과 거실
투명 유리 도어 뒤의 드레스룸
주방과 거실 사이의 프레임 글라스
닫혀 있으나 열려 있고,
나뉘어 있으나 닿아 있다.
유리는 빛을 받아
공간에 표정을 만들어낸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할 때,
바닥에 생기는 빛의 얼룩
조명이 유리에 비칠 때,
생겨나는 반사와 그림자
안개 유리 뒤로 비치는 사람의 실루엣
유리는 그 자체로 빛을 가지고 놀며
공간을 감정적으로 층위화한다.
유리는 투명하기만 한 게 아니다.
유리는 빛을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투명 유리
시원함, 개방감, 연결
창호, 가벽, 도어
반투명/안개 유리
여백, 흐림, 미묘한 경계
욕실, 파우더룸, 회의실
반사 유리
세련됨, 거리감, 도시성
외벽, 입면, 외장 파사드
유리의 마감 하나로
개방감, 프라이버시, 집중감이 달라진다.
디자이너는 유리를 사용할 때
'막을 것인가, 보여줄 것인가, 흐릴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과하게 열려 있는 공간에
프레임 있는 유리를 더해 긴장감을 만들고,
지나치게 닫힌 공간엔
투명 유리로 개방감을 더한다.
화장실처럼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곳엔
안개 유리로 흐릿한 시선을 유도한다.
유리는 시선과 빛의 흐름을 조절하며,
공간의 밀도와 분위기를 정돈한다.
유리는 “나는 여기에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존재는
공간 전체의 구도를 결정하고,
빛의 방향을 바꾸며,
사람의 감정을 설계한다.
유리는 경계를 만들되
분리하지 않는다.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기보다,
여백과 흐림의 미학으로
공간의 레이어를 설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