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방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다

아이방을 보면 아이보다 부모가 먼저 보인다

by 오륜록

아이방을 꾸민다는 건,

아이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기보다

사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가를

드러내는 일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공간은 늘 말하고 있다.


그 말의 주어가 부모라면,

아이방은 그 문장의 구조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무엇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얼마나 ‘스스로 하게 둘 것인지’ 아니면

얼마나 ‘통제하고 보호하고 싶은지’가

고스란히 그 공간 안에 배어 있다.



“여기는 네 공간이야.”라고 말해주는 구조가 있는가?


아이에게 방을 내어주는 이유는

단지 침대나 책상을 둘 자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이유는

“이 집 안에 너만의 고유한 공간이 있어.”라는

존중과 신뢰를 전달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아이방은

부모가 정한 방식으로 꽉 차 있다.


학습 책상이 벽을 바라보게 배치되어 있다든가


놀이와 쉼의 공간이 거의 없다든가


방 안 모든 수납이 부모의 손이 닿는 높이에 있다면 그건 '아이의 공간'이라기보다 ‘부모의 기대와 계획이 투영된 방’일 수 있다.


아이방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인지,

감정을 조절하고 쉬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이는 공간을 통해 자신을 설명받는다


어른에게는 직업이 정체성을 말해주지만

아이에게는 공간이 자기 자신을 정의해주는 도구다.


“나는 책상에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


“난 이 구석에서 책 읽는 게 제일 좋아.”


“이 박스엔 내가 모은 보물들이 있어.”


이런 문장들이 나오는 방은

<자기감(self-identity)>이 자라나는 방이다.


아이방이 단지 정리된 공간이 아니라

감정과 상상, 자기표현이 허용되는 곳이 되도록

어수선해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환영받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바로 아이에게 ‘안전함’을 말해주는 언어다.



아이의 나이를 기록하는 공간


아이의 방은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장난감이 늘어난 시기가 있고,

책이 점점 자리를 차지해가는 시기가 있다.


침대가 커지고, 포스터가 바뀌고,

취향이 명확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변화는 아이의 성장 기록이자 부모가 아이의 시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록이다.


아이방을 통해


“넌 더 자랐구나.”


“넌 이런 걸 좋아하네.”


“넌 너만의 생각이 있구나.”


라는 메시지를 부모가 공간으로 표현해주는 것.

그건 칭찬이나 격려보다

더 강력한 신뢰의 언어다.




결국, 아이방은 부모의 사랑 방식이 드러나는 곳이다


어떤 부모는 '최대한 많이 채워주려' 하고


어떤 부모는 '스스로 하게 하려' 하고


어떤 부모는 '안전한 껍질 안에 두려' 하고


어떤 부모는 '자유롭게 흔들리게 하려' 한다.


그 어떤 선택이든,

그건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지의 차이다.


그러니 완벽할 필요는 없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아이방을 바라보며

“이건 누구의 마음을 위한 공간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방은

이미 더 좋은 공간이 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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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방을 보면 아이보다 부모가 먼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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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방은 부모의 사랑 방식이 드러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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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공간을 통해 자신을 설명받는다. (출처 : 릴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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