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부, 인 삼재를 꼭… 찾아야 한다….”
"천, 부… 뭐라고요 아버지?"
"집안의… 보물이다. 숨겨진… 방울, 거울, 칼… 이다. 꼭… 찾아야 한다."
"집안의 보물이라고요? 어디 있는데요? 왜 뜬금없이 저보고 찾으라는 거예요? 예? 아버지!"
"네가 꼭 찾아…."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전국을 떠돌던 건설현장 노동자였다. 고아였고, 무학이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천, 부, 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여기….”
아버지 머리 맡에 앉아 눈물만 흘리시던 엄마가 내 앞으로 보따리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넙죽 엎드리며 나에게 큰절을 했다. 당황한 내가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왜 이래요?”
당황한 내 목소리를 듣고도 엄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신의 엄마가 아닙니다.”
“아니, 엄마 이게 무슨 …”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당신은 환웅님의 마지막 직계 자손입니다. 저는 그분들을 모셔온 집안의 후손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 그러니까 선대 왕검께서 지금 막 세상을 떠나셨으니... 제 역할도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있고... 한 인간으로서 행복했습니다.”
마른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을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슬픔과 놀라움, 허탈함과 의문이 한꺼번에 몰아닥친 머리 속은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텅 빈 것 같았다. 여유를 사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뼛속까지 흙수저인 집안이었다. 항상 쪼들려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빠듯한 인생이었다. 그나마 큰 다툼과 싸움, 갈등 없이 그럭저럭 화목하게 살았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렇게 별 볼 일 없고 평범했던 우리 아버지가 환웅의 뭐라고? 그런 부모님, 그런 집안 덕분에 항상 찌질하고 보잘것없이 살았던 내가 그 마지막 후손? 게다가 우리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고? 백번 양보해서 아버지 말씀이 다 사실이라고 해도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기억이 맞다면 6천년 하고도 3백년이 넘는 어마어마한 옛날이다. 환웅이니 고조선이니 하는 인물과 나라가 이 땅에 있었던 시대가. 계산만 할 뿐 내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그런 과거의 일이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며, 상관이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그리고 가치가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잡아먹기 일보직전인 세상. 그럭저럭 간신히 옷자락이나 걸치고 다녔던 시절의 원시인들이 휘둘렀던 방울과 거울, 칼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턱도 없고, 있다고 한들 무슨 값어치가 있겠나 말이다.
잠깐! 이거 혹시 몰래 카메라야? 드라마 찍는 중인가? 아니면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내 손으로 뺨을 몇대 갈겨봤다. 엄마는 여전히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고, 아버지는 쓸쑬하게 홀로 누워 있었다. 낡은 형광등 불빛이 가득찬 방안은 침침했고, 싸구려 벽걸이 시계의 초침이 변함없이 째깍거리고 있었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바로 그 세상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그동안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어 있던 어처구니없는 진실이 슬그머니 기어나와 함부러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받아들이라고, 감당하라고. 있는 줄도 몰랐던 세상으로 빨리 나오라고.
(이미지는 '뤼튼' 이미지 생성 서비스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