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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Aug 31. 2021

Less, but better

최소한으로, 그러나 더 나은

퇴근 후의 나는 뭐라도 했다는 위안을 삼고자 넷플릭스나 왓챠 앱을 켜고 뭐라도 볼 게 없나 쓱 둘러보거나, 마음에 들어오는 콘텐츠가 없을 땐 읽다 만 책들을 펼쳐보곤 한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 후 왓챠를 둘러보다 우연히 '디터람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디자이너인 '디터람스'의 디자인 철학과 업적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는 'Less, but better 최소한으로 그러나 더 나은'이라는 모토를 핵심으로 10가지 디자인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과시하며 드러내지 않는다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제품을 더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하지 않는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환경보호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10.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그는 디자인 철학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닌 '태도'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또, 자연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 세대에게 지구의 가치를 어떻게 전해줄까를 늘 고민한다고 했다. 그가 만든 원칙들을 듣다가 문득, 최근 읽은 트위터 짤이 생각났다. 내용인즉슨, 독일에서 유학 중인 친동생이 코로나로 잠시 입국했을 때 그녀의 언니는 한국에서는 프리퀀시 대란으로 구하기도 어려운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선물했다. 그런데 동생은 "언니, 독일에서는 이렇게 로고가 크게 쓰인 제품을 가지고 다니면 과잉소비를 하는 무개념인으로 생각해. 그렇지만 언니가 준 선물이니 로고만 가리고 잘 가지고 다닐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순간 집에 쌓여있는 스타벅스 프리퀀시 굿즈가 떠올랐다. 평소 출근 전이나 점심시간에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자주 애용하는데 그러다 보면 스티커가 어느새 채워진다. 구하기 힘들다는 굿즈를 받고 나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위너가 된 듯한 기분에 내심 뿌듯해하곤 했었다. 심지어 이번 시즌엔 당일 예약을 해야 수령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당일 예약 신청이 시작되는 오전 7시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마감되는 터라 오후쯤 '아, 맞다! 예약!'을 외치던 나는 번번이 예약에 실패했다. 이벤트 종료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오늘은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단단히 벼르고 눈 뜨자마자 앱을 켜놓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시계는 아침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스타벅스 어플 접속 대기자는 3만 명이 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숫자에 순간 내 눈을 의심했지만 부지런을 떨었던 탓인지 무시무시한 랜선 인파를 뚫고 무사히 접속을 했고 다행히 굿즈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힘들게 예약한 굿즈를 드디어 받아볼 생각에 기다리던 택배 상자를 열어볼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길 집 근처 매장에 들러 수령을 했고 막상 집에 와서 열어보고는 기대보다 낮은 퀄리티에 실망하곤 구석에 조용히 놓아두었다.(솔직히 그냥 당근에 팔아볼까도 생각했다..) 우연히 본 짤이었지만 순간 부끄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프리퀀시를 모으는 걸 과잉소비로 생각하거나 굿즈를 받는 것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무지함에서 오는 부끄러움이었다.


요즘 이곳저곳에서 굿즈 마케팅을 활발히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의식을 가지고 아이템을 선정하지 않으면 쓰레기를 더 생산하는 환경 비 친화적인 마케팅이 될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더불어 요즘 성 감수성이 떨어지는 콘텐츠들이 그러하듯 무분별한 굿즈 마케팅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시기도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Less, but better.' 디터람스가 우리에게 전해준 10가지 원칙들은 단순히 디자인뿐 아니라 마케팅, 브랜딩 심지어는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태도의 말들'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난 오늘도 또 하나의 태도의 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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