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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Sep 09. 2021

"커피 안 마셔요?"

커피 끊은 K-직장인의 애환

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자꾸만 기괴한 꿈을 꾸었다. 딱히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떤 날은 롤러코스터를 타며 꿈에서마저 장기가 쓸려 내려가는 생생한 기분을 느꼈고 어떤 날은 평소에 전혀 관심 없던 연예인과 둘도 없는 절친이 되어 하루를 보냈다. 잔 것 같기도, 안 잔 것 같기도 한 몇 주를 보내며 소중한 수면시간을 질 낮은 싸구려로 만드는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로 시도 때도 없이 캡슐커피를 내려 마신 탓인 듯했다. 오직 깊은 잠을 자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하루아침에 커피를 끊었다. 초반 3일은 반수면 상태로 몽롱하기만 했다. 2주 정도 지났을 때쯤 그제야 내 몸의 카페인이 다 빠져나간 건지 신기하게도 이상한 꿈이 찾아오는 빈도가 잦아들었고, 그렇게 나는 '커피를 끊은 사람'이 되었다.


최근 몇 년 새 맛있는 커피를 파는 곳이 끝도 없이 생겨나고, 심지어 2019년에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한국인으로 선정된 만큼 말 그대로 '커피 강국'이 된 곳.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아니 '커피를 끊은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모닝커피를 쏘신다는 팀장님의 카톡을 받는 날이면 팀 카톡방엔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 또는 아.라(아이스라테)"의 심플한 답변 행렬이 이어진다. 차(茶)보다는 커피를 훨씬 더 좋아하는 탓에 차선으로 디카페인 커피로라도 위안을 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차로 타협하지 않고 "디카페인 아. 아"라고 남긴다. 그렇게 나는 주문자의 주문을 번거롭게 만드는 '디카페인' 옵션을 덧붙이며 주문의 통일성을 파괴한다. 이제 팀원들은 내가 커피를 끊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나의 답변에 그 누구도 별 생각이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데 어제처럼 다른 부서 사람들과 회의를 하다가 커피라도 마시게 되는 날이면, 하... 난 또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뭐 마실 거냐는 질문에 우선 디카페인 커피 주문이 되는 곳인지 아닌지 파악한다. 그러면 또 '아.아' 사이를 비집고 디카페인 옵션이 달린 메뉴를 말한다. 막상 카페에 갔는데 디카페인 주문이 어렵다면 주문자는 나에게 다시 연락해야 하고, 나는 카페인이 포함되지 않은 다른 메뉴를 말해야 하는, 그런 불편한 그림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면 누군가 꼭 묻는다. "커피 안 드세요? 왜요? 아침에 마시는 건 괜찮지 않나요?" 나는 '커피'라는 화두 앞에서 어딘가 예민하고 번거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꿀잠만 보장된다면야- 나의 커피 끊기는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수면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나의 정성을 부디  몸이 알아주기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어젯밤엔 어떻게 잠들었는지, 간밤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깊은 잠을   있기를. 오늘도 무사히 커피 없는 K-직장인의 하루를 보냈다. 이제 베개 깊숙이 얼굴을 묻고 깊은 잠을 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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