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내 이름' 걸고 일하기
나에겐 기억에 남는 긍정 회로가 하나있다. "선입견은 곧 나의 가능성입니다. 왜냐하면 '못하는'은 '할 줄 모르는'으로 바꿀 수 있고, '할 줄 모르는'은 '배울 수 있는'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요.(feat. 태재 작가님)" 크으. '못하는 게 많다는 건 배울 게 많다'라는 이토록 긍정적인 논리라니. 그치만 나도, 당신도 알고 있다. 힘든 마음 앞에서는 긍정 회로가 돌아가긴커녕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오를 뿐인 순간도 찾아온다는 걸.
새해 복만으로 돼~
절대 잘하지 마~ 노력을 하지 마~
니가 잘하지 마~ 열심히 하지 마~
- 장기하, <새해 복>
나에겐 작년 연말이 딱 그랬다. '못 하는'은 '하기 싫은'으로, '배우고 싶지 않은'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기획자 포지션으로 채용되었지만 숫자, 데이터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퍼포먼스 마케팅 직무를 제안한 당시 팀장님의 제안에 응한 지 삼 년쯤 되었을 때였다. 강의도 듣고, 자격증도 따며 치열하게 보낸 시간만큼 일은 익숙해졌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고민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이 숫자가 나랑 무슨 상관이지?'
더 깊이 있게 업무를 파고들수록 쿼리를 짠다거나,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해야 하는 빈도는 점점 늘어갔고 때때로 직관을 무시한 채, 데이터로만 증명을 요구하는 조직의 결정에 슬슬 지쳐가던 참이었다.
'아 진짜 이제 더 이상 못 하겠어! 안 해!!!'
그간의 나의 노력을 알고 있던 지금의 팀장님과 논의 끝에 그렇게 나는 삼 년 만에 다시 기획자로 돌아왔다.
업무가 바뀐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오늘에서야 내가 그렇게도 힘들었던 이유를 생각해보게 만든 칼럼을 만났다. 최인아 대표님의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름을 걸면 애쓰게 된다. 그러므로 이름을 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경쟁에서 이기기에 앞서 기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함이다.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게 되고 그런 노력이 모여 다시 이름을 만든다. 그러니까 어디 큰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름을 걸고도 실패할 수 있지만 그런 실패엔 후회가 남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므로 부끄럽지 않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당신은 이름을 걸고 일하고 있는가?
그때 나의 일이 힘들었던 건, (그래도 치열했던 내 노력을 반영하지 않는 것 같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일이 아니라는 마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냥 대충 해~'로 마음먹게 하는 '대충병'을 데려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충병은 '아,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병'도 데려온다. 연차에 따라 월급이 상승하는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선배나 동료들에게 꽤나 자주 듣는 말이 한 가지 있다. "어차피 비슷한 월급 받는데 뭐하러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 손해 보는 건 나라는 걸. 돌아오는 건 무기력함 뿐이라는 걸.
작년 연말의 내가 '내 이름 석자를 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포지션에서 업무를 하고 있을 까? 다행히 긍정 회로가 재가동되고 있는 지금이지만, 또다시 무기력의 시간이 찾아올 때면 스스로에게 꼭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회사 타이틀 떼고, 내 이름만 남았을 때 나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할 것인가?"
무기력이 찾아올 때 꺼내먹을 오늘의 글을 남기고 나니 마치 든든한 보험에 가입한 듯한 기분이 든다.
*본문 속 기사 원문 링크 (동아광장, 최인아 / 이름을 걸고 일한다는 것)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219/1119037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