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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Mar 17. 2022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발자전거 가족

매일 쏟아지는 회사 동료들의 오미크론 확진 소식에 주 2회였던 재택근무가 이번 주부터 주 5일로 늘어났다. 재택근무를 하면 웬만해서는 모든 걸 집에서 해결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속도 잘 잡지 않기 때문에 동선은 최소화된다. 이 말은 곧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매우 귀찮아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소 주 2회는 의도치 않게 동선이 길어진다. 올해는 어떻게든 영어공부를 꾸준히 해보겠다는 다짐으로,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하는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내향인인 나는 재택근무 일수와 밖으로 나가기 귀찮은 마음이 비례하기 때문에 수업이 있는 날과 수강신청을 하는 월 말엔 어김없이 머릿속이 시끄러워진다.


'오늘은 그냥 온라인 수업 들을까? 어차피 줌(ZOOM)으로 하니까 현장이랑 똑같잖아~'

'그래도 학원에 가면 더 집중이 잘 되잖아. 멀지도 않은데 그냥 빨리 다녀올까?'

'어차피 한 달에 거의 반은 온라인 라이브 수업을 듣는 것 같은데...다음 달엔 그냥 온라인 클래스로 수강해야겠어. 심지어 수강료도 몇 천 원 더 싼데?'


이번 주는 어떤 영문에서인지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업무를 마친 후 학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대충 빨리 먹고 가려던 저녁 밥상 앞에서 넷플릭스를 켠 게 화근이었다.(TMI를 덧붙이자면, 이게 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때문이다. 김태리가 너무 귀여워서 '다음 화'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제정신을 차리고 핸드폰 화면을 무심히 툭- 쳐 시간을 확인한 순간,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와야만 했다.


초조한 마음과 함께 잰걸음으로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 때 서너 살짜리 아이가 탈법한 작디작은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시선에 들어왔다. 낮은 안장에 앉아 계셨지만 허공에서 번갈아 허우적거리는 양쪽 무릎을 미루어볼 때 키가 꽤 크시겠다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내분처럼 보이는 여성분은 뒤에서 열심히 아저씨를 밀어주고 있었다.

'아니, 안 그래도 길이 좁아서 위험한데 큰 차라도 지나가면 어떻게 하려고... 길에서 주인 잃은 세발자전거를 주워오신 건가... 독특하신 분들이네.' 속으로 생각했다.


그분들과 나의 거리가 두 세 걸음 정도로 좁혀지고 마침내 그 세발자전거가 나를 지나치는 순간, 나는 "아..!"하고 짧고 작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세발자전거 타는 아저씨와 아내분 사이에는 아저씨의 앉은 키에도 한참 못 미치는 키 작은 꼬마 남자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추측컨대, 아이는 자전거를 타다가 힘들어서 이제 그만 타고 싶다며 내렸을 수 있다. 아니면 뒤에서 힘 있게 밀어주던 아빠의 역할을 자기도 해보고 싶어서 아빠에게 빨리 앉아보라고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아빠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작은 세발자전거에 몸을 구겨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재밌게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불편한 자세를 애써 견디며 열심히 페달을 밟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3분 남짓의 시간에 '이상한 가족'이라는 프레임은 '아름다운 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뀌었다. 단면만 보고 그들을 판단한 내 모습이 순간 부끄러워져서 마스크 안쪽이 후끈한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 역을 향하던 나의 걸음은 괜히 더욱 빨라졌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은 있다. 그래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이 날은 그 '사정'이라는 것에게 '으이그~'하며 머리를 한 대 콩- 얻어맞은 듯했다. 섣불리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발자전거 가족'을 떠올려 보자. 모난 자갈같은 마음이 평지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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