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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Sep 07. 2021

새드낫새드

불행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는 것

3개월 전, 나와 S는 결혼 1주년 기념 여행 겸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숙소 예약 후  '8월에 태풍 자주 오지 않았었나? 설마 그때 태풍 오는 거 아니야?'라며 농담조로 이야기했었는데, 근 일주일 내내 예의 주시하던 일기예보는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광복절 대체 공휴일도 공표되어, 우리의 여행길에 엄청난 정체가 있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렇게 다가올 태풍과 고속도로 정체를 두려워하며 우리는 황금연휴에 휴가를 떠나는 인파에 합류했다.


장거리 운전이 처음이었던 S는 고속도로 정체에 대비해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7시에 출발하면 무리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고, 전날 내비게이션의 예상 도착 시간과 경로를 확인하며 나름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티맵은 무려 6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예측 결과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목적지까지 평소 4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로 알고 있던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혹시 몰라 또 다른 내비게이션을 확인했고 역시나 예상한 결과를 확인한 우리는 '그럼 그렇지!' 하며 계획대로 알람을 맞춰 둔 채 다음날을 맞이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을 채 빠져나가지도 못한 체 도로 위에 갇혀서 자꾸만 늘어나는 티맵의 예상 도착 시간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탄식을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 소식이 예보되어 있던 여행지 근처에 다다르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거센 빗방울이 쏟아졌다. 결국, 우리는 티맵의 예상대로 6시간이 넘게 걸려 여행지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 없이 올라탄 고속도로 위 6시간으로 무척이나 허기졌던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막국수로 유명한 지역인 만큼 네이버 리뷰 평점이 높은 '백촌막국수'를 가보기로 했다. 피크 점심시간인 것치고 여유로운 주차 공간에 희망을 안고 가게로 직진했다. 하지만 여느 서울 맛집처럼 시골맛집 조차 웨이팅은 피할 수 없었고, 무려 1시간 40분이나 기다리라는 아르바이트생의 가혹한 통보에 우리는 고민 없이 바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명색이 여행 첫날의 첫 끼인 데.. 아무 곳이나 가고 싶진 않아 포기하지 않고 근처 또 다른 맛집을 2곳이나 찾아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1시간 이상 기다리셔야 해요." 우리는 그제야 마음을 비우고 웨이팅을 걸어둔 채 근처 바닷가를 구경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S의 목소리가 커지며 "선배 맞죠! 우하하하하하"하는 통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몇 초 후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야!!!!!" 하는 쩌렁쩌렁한 외침.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다름 아닌 S의 전 직장 선배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그 둘의 반가움을 배가시켰고 (사실 골목에서 2번이나 마주쳤는데 선배는 내가 와이프가 아니면 어쩌나 싶어 아는 척을 못 했다고 한다..!)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또 다른 막국수 집에 가보길 권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운 좋게 바로 테이블로 안내받아 음식을 주문했다. 차선을 선택할 때면 늘 그렇듯이, 정말 별 기대가 없었는데 막국수보다는 사이드 메뉴로 주문한 수육에서 예상치 못한 행복을 경험했다. 정말이지 우리의 행복한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맛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족스러운 점심식사 후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비 소식 때문인지 생각보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까만 먹구름에 당장 물놀이를 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사실 그 숙소는 오직 물놀이를 위해, 비싼 숙박비를 감수하고 일부러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곳을 찾다가 어렵게 예약한 곳이어서 우리의 아쉬운 마음은 더 커졌다. 그래도 숙소 창가에서 보이는,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 몇몇을 위안 삼아 그냥 바다에 몸을 던져보기로 했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바닷바람은 더 차가웠고, 해수욕장이 맞는 건지 의심될 만큼 인생에서 본 적 없는 높은 파도를 마주한 우리는 그 엄청남에 그저 웃음이 났다. 해수면 온도는 서서히 변하기 때문에 온도가 한 계절 늦다고 들었는데, 막상 입수하니 다행히 바깥의 공기 대비 따뜻한 온도였다. 그리고 우려했던 높은 파도도 우리의 흥을 가속하기에 딱 좋은 높이였다. 머리 위로 짠 바닷물을 훌렁 뒤집어쓰고, 거센 파도로 몸이 해변가로 패대기 처져도 뭐가 그렇게 웃긴지 목이 아플 정도로 깔깔 웃어대며 약 2시간 동안 물속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탔다.


오늘 신나게 파도를 타며 문득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저 멀리 두려울 만큼 높은 파도가 다가올 때 그 파도를 '마주 봐야 오히려 덜 무섭다'는 것. 무섭게 다가오는 파도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 파도가 나를 언제 통과할지 예측이 가능해서 그 속도에 맞춰 제자리 점프를 뛰며 파도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면 두려웠던 파도는 '즐거움'이 되어 이미 나를 통과해 저 멀리 부서지며 사라져 갔다. 오히려 나를 휘청이게 한 건 오히려 파도를 마주할 때가 아닌 파도를 등지고 있을 때였다.


S 나의 삶에도 높은 파도처럼 두려운 장애물이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때 장애물을 등지며 어떻게든 보지 않고 피하려 하기보다는, 함께 손을 잡고  장애물 마주한다면  장애물에 올라타도 언제 두려웠냐는  웃을  있지 않을까?

오늘 고속도로가 정체되지 않았다면, 그 선배를 우연히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럼 대기 없는 식당에서 맛있는 수육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흐린 날씨가 아니었다면 높은 파도타기가 주는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불행이 아닌 행복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번 1주년 결혼기념일 여행이 우리에게 준, 부부로 함께 살아가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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