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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Jul 22. 2022

좋아하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은 다르다

"선배,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가볍게 티타임을 하며 최근 회사에서의 빡침 포인트를 서로 풀어놓던 , 회사 후배는 갑자기 한껏 진지한 눈썹으로 한숨쉬며 말했다. 이어서 후배는 "저는 잘하는  없는  같아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 왜 잘하는 게 없어요~ J님은...."


내가 몇 년 간 지켜본 후배 J의 장점을 진심을 담아 늘어놓으며 그에게 나의 작은 위로가 가닿길 바랐다. 그러다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후배의 말처럼 '좋아하는 일'이란, 곧 '잘하는 일'을 의미할까.


돌이켜보니 나 또한 그랬다. '좋아하는 일'은 왠지 '잘하는 일'이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 같은 게 있다. 어릴 때부터 줄곧 들었던 질문들 때문일까. 성장과정에서 질문하는 주체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늘 빠지지 않고 들었던 물음들. 이를테면 "너는 무슨 과목을 좋아하니?"나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같은 것 말이다. 이런 질문들은 곧 "넌 무엇을 잘하니?"에 상응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늘 대답하기를 주저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면 "우와~ 그림을 잘 그리시나 봐요!"라는 반응이 으레 돌아오니까.


문득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 없다고 느끼며 납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암묵적으로 "좋아하는 일 = 잘하는 일"이 되어버려 좋아하는 일을 쉽게 포기하거나 미뤄두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여기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메모장을 꺼내 요즘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끄적여보았다. 한 두 개쯤 적고 나니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종이를 골똘히 응시하다가 좋아'서' 하는 일로 '서'라는 한 글자를 추가해보았다. 한 글자만 달라졌을 뿐인데 '좋아하는 일'보다 좋아'서' 하는 일은 잘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왠지 귀엽게 봐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글자 차이지만, 뭔가 조금은 더 관대함이 느껴지는 말 같았다. 그러자 적고 싶은 것들이 더 떠올라, 멈춰 있던 곳에 이어서 몇 개를 더 적을 수 있었다.


어젯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 영상을 시청했다. 멤버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으나 성장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각자 도생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컬인 후카세의 제안으로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20대 초반의 일반인 모임으로 결성된 무명의 밴드였기 때문에, 이들은 전단지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하며 작곡, 작사를 병행해야만 했다. 그러다 각자 2천만 원 이상의 빚을 내어 공연을 할 수 있는 클럽까지 열었다. 이들에게 '음악'은 '좋아하는 일'이 아닌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아도, 돈을 잘 벌지 못해도 괜찮았던 것 같다. 좋아해서 잘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오늘도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목표와 예산 같은 정량화된 이야기들을 무수히 나누고 퇴근했다. 언제나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수익을 내야 하는 일에선 결국 '결과'가 이기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탓에,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일'에서 마저 효율을 따지며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시작했는데 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밀려들어 불안해지거나 성장의 압박이 느껴질 때, 우리 한 글자의 마법을 더해보자. 결과에 상관없이 이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면, 누구든 좋아하는 일 하나쯤은 자신 있게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까 적어둔 '좋아서 하는 일' 리스트를 다시 쭉 읽어보았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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