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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Apr 28. 2022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엔 함정이 있다

필라테스와 함께한 지난 5개월의 기록

어깨와 목 통증은 중학생 무렵일 때부터 내 삶의 일부였다.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등이 굽어지기 일쑤였고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잘못된 자세가 굳어진 것인지 내 어깨는 늘 긴장되어있었다. 내 승모근은 언제나 딱딱했고 그런 내 승모근을 풀어주는 일은 예민한 수험생 시절이나 대학교 시험기간이 때때로 아빠가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 통증들을 해결할 방법은 틈나는 대로 스트레칭을 하거나 근육을 이완시키는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유익한 습관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귀찮고,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도 자주 밀리곤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동료와 동행한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여느 때처럼 어깨가 아파 스스로 주무르고 있는데 어깨가 아프냐고 물어왔다. 

"아 네... 근데 뭐 괜찮아요. 어깨 통증은 이제 저의 삶의 동반자라고나 할까..." 

그 동료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필라테스 센터에 함께 다니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본인은 2년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눈에 봐도 탄탄하고 건강해 보이는 그녀가 그날따라 유독 멋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뭔가에 홀린 듯이 집 대신 센터에 따라가서 무작정 필라테스 3개월권을 등록했다.


사실 몇 해전에도 필라테스 PT를 6개월 정도 받은 적이 있다. 야근이 많았던 시기라 계속 이렇게 살면 죽겠다 싶어서 등록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센터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집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재등록을 멈췄고, 그 핑계로 필라테스와는 점차 멀어졌다. 그런 내게 동료의 말을 계기로 필라테스가 다시 손을 내밀어 준 것이었다. 이제는 막연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필라테스의 손을 나는 다시 잡아보기로 했다. 


선생님: 회원님, 필라테스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 네!(당당) 


그래도 6개월 동안 PT를 받았던 이력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따라가겠지 하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기구에 올라타자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양팔과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어머, 내 다리 왜 이러지?!' 

너무 당황스러우면서도 비현실적인 그 떨림에 허탈한 웃음마저 났다. 선생님은 본격적인 동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기본자세부터 다시 잡자고 했다. 매트에 천장을 보고 누워서 등을 붙인 채로 골반와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를 하는데, 갑자기 허벅지 뒤쪽이 쥐가 난 듯이 당겨왔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데 스트레칭은 전혀 하지 않아 근육이 타이트해진 탓이라고 했다. 

'와, 진짜 이 자세도 안된다고???' 

선생님 앞에서는 겸연쩍게 웃고 말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몇 해 전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었어도, 오랜 기간 쉬었다가 재회한 필라테스는 완전히 낯선 존재가 되어있었다. 필라테스의 기본인 흉곽 호흡*, 임프린트*와 중립*, 그리고 분절*.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용어들이 생전 처음 듣는 것인 양 어색했다. 하긴, 일주일만 운동을 쉬어도 그 다음번 운동이 힘든데 거의 4년을 쉬었으니 이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필라테스를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을 땐 잘 몰랐던 몸의 불균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쪽 발바닥의 아치는 무너져있고, 골반도 앞으로 빠져있고(이걸 '전방 경사'라고 한다고 했다) 등근육도 전혀 쓸 줄 몰라 날개뼈를 올리고 내리는 것도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내 현재 몸 상태를 파악하고 나니, 홈트를 하고 나면 왜 무릎이 아픈지, 오래 걸으면 왜 오른쪽 발이 유난히 아픈지 조금씩 원인을 알게 되었다. 필라테스를 하지 않았다면 또 별 문제 아니겠지라고 넘겼을 크고 작은 통증들. 하나를 시작하면 또 다른 하나가 보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을지도.


피곤해도 어떻게든 운동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덕분에 무뎌져 있던 몸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번 달에는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2주간 운동을 못해서 지난달 대비 수치가 조금 안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5개월 차인 지금, 체지방량은 약 2kg가 감소했고, 근육량은 0.5kg가 증가했다. 내장지방 레벨도 두 단계나 감소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근육량도 점차 표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좌) 5개월 간의 변화 / (중간&우) 작년 12월과 올해 3월 근육량 분석


그리고 오늘 5개월 간의 필라테스 수업이 종료되었다. 5월부터 담당 선생님이 다른 지점으로 전근을 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도 다음 달 말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터라 별도로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4년 전과 같은 기로에 서있다. 필라테스와 다시 멀어질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인연을 유지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되새겨야 할 시간이 왔다. 두 달 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1) 흉곽 호흡 :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가슴 밑 흉곽(갈비뼈 부분) 부분을  앞, 뒤, 양 옆으로 크게 부풀려 주고 내뱉을 때는 코르셋으로 흉곽을 꽉 조인다는 생각으로 내뱉는 호흡법 

2) 임프린트 : 배꼽을 뒤로 쏙 넣고 꼬리뼈를 살짝 앞으로 당겨 골반이 바닥으로 밀착된 자세

3) 중립 : 골반의 양쪽과 골반의 중앙, 3개의 포인트를 연결시켜 그 삼각형이 바닥과 평행을 이루는 자세

4) 분절 : 척추가 통으로 움직이지 않고 척추 마디 하나하나 내려놓듯이 움직이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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