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 우리 부모님이 자주 올라가시던
나도 부모님을 따라 종종 올라가곤 했던
절에 찾아 올라갔다.
내게 불교 신자냐고 물으면
확실하게 맞다고 대답할 순 없다.
오히려 무교에 가깝다고 믿는 편인데
할머니부터 부모님까지
절에 종종 찾아가곤 해서
내게는 어려운 장소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이다.
비가 꽤 많이 내리는 날이라
올라가는 길이 미끄러웠지만,
오르는 길 눈앞에 산은 웅장했고
옆에 흐르는 강은 아름다웠고 고요했으며
내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이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영화나 애니의 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등산을 할 때 느끼는 나의 감정과 기분은
일상 속에서 무기력한 나의 모습보다
가히 활기차고 밝으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등산객들도 없어서 더욱 숲의 세계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올라가는 길에 식량을 저장하는지
땅을 파고 있는 청설모도 만나고
아직은 초록초록한 잎사귀들과
거친 바위들을 건너
물이 흐르는 계곡을 지나면
어느새 절에 도착할 수 있다.
내게는 익숙한 형태의 상원사라는 절은
크지는 않지만 나에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잠깐의 쉼터였다.
스님마다 성향이 모두 다르시지만
이번에 오신 스님은 내가 찾아뵙는 걸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반기시는 기분이 들어서 종종 찾아뵈었다.
스님을 만나 뵙기 전에
먼저 부처님을 찾아뵙고 삼배를 드렸다.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처음은 안부 인사를
두 번째는 내가 소망하는 것을
세 번째는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이렇게 절을 하는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삼배를 시작하면
항상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삼배를 마치고 스님을 찾아뵈었다.
막 점심시간이 끝난 시간이어서
식사는 마치신 상태였으며
내부에는 보살님 한 분이 계셨고
세 마리의 고양이가 스님 방 내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점심을 먹지 않았다고 하니
나물들과 국을 내주셨다.
감사했다.
요즘 어느 공간에 찾아가도
10대 전후에 느꼈던
한국인의 정과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없었는데,
감사 인사를 드린 후에도
정겨운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
바로 먹지 못하고 한동안은
차려진 상을 바라봤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부모님을 따라
친척들을 보러 내려가지 못해서
추석 기간 동안 잘 챙겨 먹지도 않던 밥을
이렇게 챙겨주시니 더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다.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먹고 있으니
보살님이 내려간다고 하셔서
감사하다 다음에 또 뵙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도 식사를 마친 후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했다.
설거지를 마치니 고양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걸어 나왔다.
치즈 냥이라고도 말하는 등부터 다리까지
금빛 털이 물들어있는 단비부터
까만 털이 매력적으로 박혀있는 까미
그리고 두 자녀의 아버지인 앵두까지.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된 아깽이 시절에
꼬물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데,
5개월이 지난 이후에 보니까
제법 고양이 티가 났다.
한 달이 막 지났을 때에는
잘 걷지도 뛰지도 못하더니
지금은 높은 곳도 쉽게 뛰어 올라가는
꽤나 어엿한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생명이 탄생해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경이롭고 소중하며 기뻤다.
나를 반겨주는 고양이들과
인사를 한 후에
스님께서 말을 건네셨다.
"요즘 학업은 어떠니?"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나쁘지 않다고만 대답하였다.
할 말은 많았지만
굳이 스님 앞에서 한풀이를 하거나
어른답지 못한 어리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말을 최대한 삼켰다.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그다음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그래,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이 많아도 네가 그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거라. 인생이 곧 인내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란다.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게 있다면 네가 그 자리에 오르거든 그때 고양이가 발톱을 드러내듯 활개 치는 게 순리고 그전까지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렇게 살거라."
머리로는 이해되는 언어들을
직접 귀로 들으니 더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열심히 하겠다고 나서서 잘난 척하면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다.
지금껏 그렇게 계속 밟히면서도
나는 절대 굽히지 않았다.
맞다고 생각한 정의를 말하지 못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꼈고 그걸 내가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과신이고
집단에서 미움의 대상을
특정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명한 처세법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들이 모를 거라
착각하는 것 자체가 과신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인데
굳이 내가 말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말을 하나 할 때에도 신중하게
골라서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누가 나에게 뭔가를 묻는다면
그때 짧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정말 잘났다면 앞에 나서서
굳이 잘난 척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나를 인정해 줄 것이고
정말 필요한 경우에 발표를 해야 할 때에
지금껏 쌓은 내실을 보여주면 되는 거였다.
침묵은 금이요.
입은 무거워야 한다.
위 말씀 이후로는 저 주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스님께서 살아온 인생사에 대해 들었고
책을 읽은 구절에 나온 장면을 보기 위해
혼자 여행을 갔던 경험이나
살아있는 학문을 하고 싶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공감이 갔다.
중간중간 웃음 코드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어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굵은 주제는
두 가지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야 한다가 첫 번째였고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두 번째였다.
내가 지금 새로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학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그 일에 열중하며 그게 무슨 일이 됐건
강렬하게 원하는 동기가 있어야
그곳에서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주제넘지만 이 글을 읽는
30대 이상의 분들에게는
열심히 살아오신 것에 대해
응원과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고
30대 이하의 분들에게는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본인이 강렬하게 원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한 후에
다른 일에 종사하는 분들도 계실 거고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를 찾지 못한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고 인생에서 실패했냐
그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삶에 적용시키며 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다.
부모님들을 생각해 봐도 우리를 키우느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신 분들도 계실 거고
그 당시에는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후
저녁도 먹고 내려가라고 말씀하셔서
나물들을 꺼내고 따끈한 밥을 챙겨서
마음까지 따스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고양이들도 배웅을 해주었고
스님께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도 합장을
한 후에 산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도 비가 내렸지만
올라오는 길만큼이나 발이 가벼웠다.
어둑한 산의 풍경은
올라올 때 보았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나를 위협한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오늘 들었던 말들을 명심하고
삶에 적용시켜야겠다.
내 주위에는 나를 생각해 주는 좋은
어른들이 있고 좋은 환경도 갖추어져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하루였고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