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마침표가 필요한 이유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뚝.
세 번째였다.
더 이상 실수도, 해프닝도 아니었다.
그건 고의적인 선택이자 명백한 거절이었다.
더는 연락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거절의 기억이 옅어질 즈음이면
또다시 친구에게 손을 뻗을 것만 같았다.
밤 열 시의 적막한 귀갓길에서
습관처럼 차오르는 쓸쓸함을 오롯이 감당하기에는
나는 너무 미숙했다.
그래서 친구의 번호를 삭제했다.
스무 살 봄, 나는 대학교를 자퇴했다.
그 뒤로 오전에는 배달을 했고,
오후에는 학원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매일, 종일토록 말없이 지내다 보니
나는 그저 누군가와 대화라는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깝다고 믿었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주기적으로 안부를 물었다.
처음 연락을 받은 친구들의 답은 따뜻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문장의 길이는 짧아졌고,
답이 돌아오는 시간은 길어졌다.
온기가 완전히 식어버린 후에야 인정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반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들에게 그저 지나간 인연이었다.
더는 궁금한 것이 없는, 어쩌면 조금 귀찮은 그런 존재.
나는 비참함을 서운함이라 포장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지나간 인연을 붙잡으려 했던 건,
나의 욕심이었다고 말이다.
내 성격 유형에 대해 찾아보다가 낯선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도어슬램(Door Slam)'
인간관계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상대에게 아무런 예고 없이 마음의 문을 쾅 닫아버리는 현상.
그 설명을 읽는 동안 스무 살 무렵이 떠올랐다.
내가 별안간 번호를 지워버렸던 사람들,
그렇게 놓자마자 그대로 끊겨버린 그 인연들이.
나는 상대가 싫어서 문을 닫은 게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비참해지는 내 모습을 끊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을 곧 그만두었다.
문을 닫는 일보다,
그 지점까지 관계를 붙들고 버티는 과정이 더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반응이 언제쯤 달라질지 불안해하며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은 다 닳아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문턱까지 가서 문을 쾅 닫아버리는 대신,
애초에 내 마음속에서
관계의 길이를 하나의 시절 정도로만 여기기로 했다.
그건 곧 인연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었다.
마침표를 찍는다는 건 억지로 인연을 끊어내는 일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시절 인연'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관계를 지난 시간 속에 조용히 놓아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를 내려놓자,
문을 닫아걸어야 할 만큼 상처받는 일도 사라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놓아주고 나니
오히려 끝났다고 여겼던 인연들이 느슨한 모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마침표로 끝내는 법이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 온 것이었다.
나는 인연에만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스치는 모든 일에서
어디까지 남기고 어디서 멈출지,
그 한계선을 명확히 그어 두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찍은 사진을 채팅방에 전송하고 미련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내 앨범에는 오직 베스트 컷 한 장만 남겼다.
작업할 때는 가장 먼저 메일함을 열어
쓸모없는 메일부터 모조리 비웠고,
다시는 열어볼 것 같지 않은 곡과 영상들은
언젠가를 기약하는 법 없이 즉시 삭제했다.
대화에도 마침표가 필요했다.
이야기가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더 이상 물음표가 남지 않도록
대화의 문을 닫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지우는 것만이 마침표가 아니었다.
나는 매일 일어난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을 기록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했고,
보고 느끼는 것들을 각 테마에 맞춰 차곡차곡 적어 두었다.
대상과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나에게는 다 같은 의미의 '정리'였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나에게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정리해 둬야만 마음이 편해지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이해했다.
예민함이었다.
대화 중에 스친 표정,
답이 없는 메시지,
언젠가 정리해야 할 데이터들까지.
그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
머릿속을 정처 없이 떠다니며 나를 어지럽혔다.
그러니 쉽게 지치고
금방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본능처럼 정리를 배운 것이었다.
머릿속에 걸어둘 것과 내려둘 것을
명확히 구별하는 법을 말이다.
인연을 정리하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을 지운다기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한 거였다.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정리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정리는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방어가 아니라,
나의 일상을 가볍게 지탱하기 위한
나만의 생존 방식이라는 걸 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