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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안녕하세요

내가 완벽주의자라니

by 발견씨


(자세를 고치며) 안녕하세요.

(한 톤 올려서) 안녕하세요?

(고개 살짝 내리고) 안녕하세요!

(입을 크게 벌리고) 안—녕—하—세—요.

(렌즈를 닦은 뒤) 안녕하세요...

(또박또박하게) 안.녕.하.세.요.

(혼잣말하듯) ...안녕하세요.


늘어진 끝음,

뭉개진 모음,

못생긴 옷주름,

갈라진 앞머리.


탈락, 탈락, 탈락!


나는 지금,

1분짜리 자기소개 영상을 위해

101번째 안녕하세요를 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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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씨랑 칼린이 하면 힘들 것 같은데..."

"왜요?"

"둘 다 완벽주의자라서."

"저 완벽주의자 아니에요. 기준이 높을 뿐이죠."


첫 직장의 대표와 팀장에게서 처음 들었다.

내가 완벽주의자라니? 말도 안 된다.


내가 아는 완벽주의는

완벽하지 못할 바엔 시작도 하지 않는,

변명과 나태함 뒤에 교만이 숨겨진 태도였다.


살면서 그런 사람을 적지 않게 봤고,

그들은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 불렀다.


그러니 그 말은 늘

내 반대편에 서 있어야 했다.


나는 부족함을 품은 채로

해마다 새롭게 나아갔으니까.


하지만 그 믿음은 얼마 안 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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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사를 떠나기 두 달 전.


나는 회사 유튜브를 운영하며

내 채널을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카메라부터 조사했다.

브랜드, 시리즈의 역사, 세대별 차이.

후보를 좁히고 리뷰 영상을 전부 봤다.

댓글과 대댓글까지 훑었다.

기억이 흐릿해지면 다시,

후보가 바뀌면 또다시 봤다.


두 모델만 남았을 때,

중고 사이트에 키워드 알림을 걸고

상태별 시세와 거래 속도를 살폈다.

그러다 렌즈가 눈에 들어오면

바디와의 조합을 고민하며 처음으로 돌아갔다.


카메라를 사는 데 한 달,

촬영에 또 한 달을 썼다.


틈만 나면 대본을 고쳤고,

첫 촬영본을 편집한 뒤

또다시 쓰고 찍으면서.


그렇게 쌓인 원본 세 시간 중 십 분을 뽑았다.

그리고 없어도 되는 말을 하루에 하나씩 지웠다.

3주 뒤 남은 건 1분.

그제야 알았다.


"내가 완벽주의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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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운영하던 어느 날,

오래 붙잡던 오해가 풀렸다.


완벽주의에도 갈래가 있었다.

그 갈래를 나누는 기준은 두 가지다.


기준이 나에게 있느냐, 남에게 있느냐.

초점이 방어에 있으냐, 성장에 있느냐.


기준은 나에게,

초점은 성장에 있는 것이

완벽주의자의 종착 희망지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책은 말한다.

행복한 완벽주의는 태생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며 닿는 자리라고.


나는 그 길 위를 걷고 있다.

수많은 고민과 수정에 지칠 때도 있지만,

조금씩 더 단단한 끝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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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서적: [네 명의 완벽주의자]

https://brunch.co.kr/@todaysfind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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