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이름의 동력
단중초등학교 5학년 2반, 두 번째 분단 넷째 줄.
신문지 속 깊게 주름진 남자의 얼굴을 도화지에 옮기고 있었다.
얼굴형과 이목구비의 비율이 제법 맞아 들어갔고,
허접하던 선들도 하나둘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순조롭다 싶던 바로 그때였다.
"10분 남았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리자,
연필을 쥔 손가락 마디마다 힘이 바짝 들어갔다.
식은땀이 손바닥에서 등을 타고 번지기까지 1분이면 충분했다.
잠시 후, 쉬는 시간 종이 요란하게 울리자 이마와 목덜미까지 금세 축축해졌다.
아이들은 그림을 내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교실과 복도는 삽시간에 왁자지껄해졌다.
그 소란 속에서도 내 세계는 4B 연필과 종이, 그리고 남자의 깊은 주름뿐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
선생님이 의자를 끄는 소리에 결국 연필을 내려놓았다.
마음에 드는 만큼 다듬지 못했다.
아니, 마음에 드는지 판단할 틈조차 없었다.
끔찍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주름 많은 남자를 고른 선택이었을까,
내 손이 알게 모르게 게으름을 피웠던 걸까,
애당초 40분 안에 초상화를 그리라는 과제가 부당한 것 아닐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게 촉박함이란 감각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언니, 프로덕션 과제 언제 할 거야? 같이 하자."
"나 이미 했어."
"엥? 그저께 내준 거잖아."
끔찍했던 미술 시간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아
나를 웬만한 일은 곧장 끝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과제 기간이 일주일이면 대개 이틀 안에 마쳤다.
그렇다고 바로 내진 않았다.
늘 두세 번 더 고치고 마감일에 제출했다.
과제에 에너지를 과하게 쓰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게 '마친 과제를 다시 열어 손볼 수 있는 여유'는 큰 장점이기만 했다.
밥을 먹다가도, 샤워 중에도 덮어둔 파일 속 걸리는 대목이 문득 스쳤고,
고치지 못하면 그 생각은 오래 머릿속을 떠돌며 나를 거슬렸기 때문이다.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그 패턴은 어느덧 내 습관이 되었고,
덕분에 나는 스트레스 없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습관의 진가는 시험 기간이면 더 또렷해졌다.
동기들이 끝내지 못한 과제들에 허우적대는 동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개인 공부를 마쳐도 시간이 남았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ㅡ내가 보기에도ㅡ나는 참 여유로웠다.
마감이 다가와야 과제를 시작하는,
인간의 본능 같은 그 패턴에서 나는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방법은 단순하다.
시간에 쫓기면 된다.
마감이 임박하지 않아도, 늘.
"확실히 불안이 높으시네요."
대학 시절, 과제를 늘 일찍 끝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상담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스트레스에 꺾여 비실거리는 요즘 유독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게 나를 힘들게 한 근본이었을까.
나는 오랫동안, 멈추면 곧 떨어질 듯한 줄 위를 걸어온 것도 같다.
지난 상담 뒤, 나는 불안을 다룬 책들을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는 기다렸다는 듯, 지난 내 모습들이 나를 반겼다.
'(2화) 시험 종이 치면 배가 아픈 이유'라 적었던 과민성대장증후군,
'(9화) 101번째 안녕하세요'를 찍게 만든 강박적 수정,
바람 소리에도 화들짝 깨는 탓에 늘 귀마개를 끼고 잔 밤들,
상담과 AI에 기대 내 생각을 확인받았던 대화들까지.
그 기저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었다.
그저 예민한 감각 탓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타고난 예민함이 성능 좋은 '센서'라면,
불안은 그 센서에 연결된 경보를 오작동시킨 주범이었다.
그리고 나의 성실함은,
그 고장 난 경보를 끄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 그 자체였다.
'계속 달리다 보면, 언젠가 온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스무 살 중반까지 이 생각에 기대어 살았다.
그때는 매일 달리며 느끼는 성취감이 좋았다.
그런데 불안이 바라보는 미래가 현실의 숫자가 되는 순간, 많은 게 달라졌다.
어릴 적엔 과제를 잘 해냈다는 사실만으로,
근사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꺼낼 명함을,
주저 없이 카드를 내미는 가벼운 손을 갖고 싶었다.
그 현실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얼마나 달려야 내게 올지도 알 수 없었다.
불안은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고,
어느덧 동력을 넘어 일상을 갉아먹는 고통으로 번졌다.
여느 책에서 말하듯, 기대를 낮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겨우 편안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아직은,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요란한 경보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하루는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불안한 순간에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요?"
떠오른 말은 하나였다.
"못해도 괜찮아."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나에게,
어쩌면 세상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네가 잘해도 결과는 안 좋을 수 있어."
실력이 좋아도, 남들보다 더 안간힘을 써도
좋은 결과가 항상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그 잔인한 진실에서 어쩐지 안도감을 얻었다.
그 인정은, 달릴 힘을 지키면서도
결과의 무게를 나의 노력과 분리해 주는 유일한 주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 결과를 향한 욕망은 여전히 깊고 무겁다.
그래서 버거운 순간은 앞으로도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는 아이를 달래듯
나는 나를 토닥이며 같은 말을 건넬 것이다.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고장 난 경보의 볼륨이
아주 조금은 낮아져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