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바라던 대로 집 나간다.
나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살아.
3월 6일 오후 세 시,
반팔과 패딩이 어색하게 섞인 계절.
엄마가 나에게
모든 화를 쏟아낸 지 나흘이 지났다.
겉옷, 베개, 충전기, 샴푸, 시계...
메모장에 적힌 물건들을 하나씩 가져왔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도
손과 발은 멈추지 않는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결심만큼,
캐리어를 무겁게 채울 뿐이었다.
나흘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날,
쪽지 하나 남긴 채
익숙한 현관문을 나섰다.
3월 15일 새벽 한 시,
귀마개를 뚫고 세탁기 소리가 들린다.
가끔 잠을 방해받는 날도 있지만,
방을 가득 채운 침대 위는 생각보다 편안하다.
며칠 만에 고시텔 생활에 적응했고,
지내보니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용품과 밥, 김치, 라면이 제공되고,
분리수거까지 알아서 해준다니
집에서 지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온다.
'나 하나쯤 없어도 다 잘 살겠지.
애초에 내가 도움 된 적이 있었나.'
나를 찾는 연락이 줄어들자,
죄책감이 외로움에 오염됐다.
4월 4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생활비를 벌려고 시작한
태권도 보조사범 일은
처음부터 적성에 맞지 않았다.
퇴근하면 종종 열이 났는데,
오늘은 그 열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열 때문인지, 불안 때문인지 속이 불편하다.
과거 간 수치가 올라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 네 시, 나아질 기미가 없다.
"금방 갈게."
결국,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장염.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함께
4월 5일 아침,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4월 10일 오후 다섯 시.
표정도 말도 없었지만,
엄마는 만족한 듯
지압원 유리창을 사진으로 남겼다.
마사지부터 반신욕까지, 두 시간.
적막을 느끼며 속으로 다듬은 말을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겨우 꺼냈다.
"앞으로 내가 하자는 거 같이 해.
내가 엄마한테 나쁜 거 안 시키잖아.
내 말대로 할 거지?"
"응"
"그럼 상담 신청하러 가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집에 들어오긴 싫었다.
우리의 관계가 조금은 달라지길 바랐다.
그러려면, 엄마가 더 행복해야 했다.
그러려면, 엄마가 마음을 조금 더 잘 표현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어색함이 가시기 전에
새로운 변화를 제안했다.
7월 29일 오후 다섯 시.
세 달간 진행된 상담이 종료되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고,
나 역시 처음으로 엄마의 생각을 들었다.
눈물바다가 되기도 하고,
서툰 사과를 주고받기도 했다.
한 번은 상담사가 이렇게 물었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이해'라고 답했다.
대화, 신뢰가 먼저 떠올랐지만,
이해 없이는 아무것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 몇 번에,
어색한 감사 인사 한두 마디에
기적 같은 변화가 찾아오진 않는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엄마는 나를 '아주 조금' 이해했고,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