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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버거운 서비스업

by 발견씨


"총 두 잔 맞으세요?"

"아니요. 라테 한 잔,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이해되지 않는 대화를 두세 번 반복하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는다. 따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다 표정까지 눌러버린 탓이다. 가끔은 그냥 말해버리고 싶다.

"그러니까 총 두 잔 맞잖아요."

당신이 잘못 들었고, 잘못 대답했다고 시원하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공격은 받는 쪽보다, 하는 쪽의 잔상이 더 오래 남으니까.





삼킨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엔 말릴 새도 없이 감정이 튀어나와 공기를 차갑게 만든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한 사람의 요청을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거절해 버렸다. 컵을 버려달라길래 쓰레기통을 가리켰고, 남은 커피를 보여주길래 뒤돌면 보이는 화장실을 안내했다. 고객의 정당한 요청을 완벽하게 차단하고도, 그때는 내 행동이 옳다고 믿었다.

여기는 마치 음료 자판기 같았다. 카페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도록 사장님은 보이지 않았고, 직원은 음료만 빠르게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고객이 직접 음료를 캐리어에 담는 모습조차 자연스러웠다. 인수인계를 해준 직원은 여기를 '일하기 제일 편한 카페'라고 했지만, 나는 반만 동의할 수 있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성의 없는 매니저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그 매니저는 몇 주 뒤 그만뒀지만, 이 공간의 가치를 떨어뜨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매니저는 사부작사부작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좋은 날이 오려나 싶었지만, 기대는 곧 빗나갔다. 매니저는 주문이 들어왔는데 조용히 사라지거나, 무언가(커피, 시럽, 얼음 등)를 자주 흘렸다. 작은 실수에 익숙해질 만하면 커피머신을 멈추게 하거나 쓰레기봉투를 터뜨려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게 스트레스였다.

세 시간 만에 하루치 스트레스를 초과하는 날마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 서비스업이라고 다짐했다. 이인삼각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협업해야 하는 일, 매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일은 나와 맞지 않았다. 한동안은 빨리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원동력 삼아 더 열심히 나아갔다. 하지만 삶은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불안을 양분 삼아 분노만 무럭무럭 자랄 뿐이었다. 매일 매니저 오답노트를 쓰는 일에도 질려버렸고, 음료 자판기가 된 내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결국, 감정의 불똥이 엉뚱한 사람에게 튀고 말았다.





고객의 요청을 거절한 일은 한 달이 지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정말 싸가지 없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설명하고 싶다. 그 시기 나는 내부자들에 대한 분노에 길들어 있었고, 이 공간을 하찮게 정의했으며, 이해되지 않는 대화를 마주할 때마다 그 대화를 곱씹으며 복수심을 키웠노라고. 그렇게 가장 날이 서 있던 날, 당신을 만났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미안하다는 거다. 상황이 어떠했든 무안을 줘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아는데, 정작 내가 싸가지 없게 군 그 사람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만날 수 없어서 그런 걸까.





그 사람은 떠났지만,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이 공간을 다시 정의했다. 이곳은 마라톤 중간에 물을 건네받듯, 직원들이 잠깐 들러 에너지를 채우는 곳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마라톤을 함께 뛰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고객들은 주문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음료를 챙기고, 자리를 찾아간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나는 먼저 사장님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했고, 매니저에게 판매 업무를 맡긴 채 창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 가장 어려웠던 매니저와의 일방적인 갈등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퇴사를 결심한 날, 나는 사장님과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를 나눴다. 기대가 없었기에 오히려 더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뜻밖에도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대화 끝에 감정이 가라앉자 나는 또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매니저님, 우리 대화하면서 일해요."





“말없이 사라지면 제가 오해해요.”

“컵은 한 번에 한 줄을 다 채워야 더 편해요.”

“이렇게 하면 커피가 더 깔끔하게 내려져요.”

그다음 날엔 얼음, 또 그다음 날엔 제조 순서, 다음엔 정리. 나는 하루에 하나씩, 더 나은 방식을 매니저에게 건넸다. 두세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도 있었지만, 다시 짚어주지 않아도 매니저는 조금씩 내가 말한 대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지낸 지도 어느덧 3개월. 이제는 손발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좋은 미래가 없다고 느끼면, 나 역시 미련 없이 빠르게 벗어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딜가든 아쉬운 점은 있다. 그렇기에 기준이 필요했고, 이곳은 그 기준을 충족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좋은 점을 붙잡고 버텨봤다. 그러자 하나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제일 불편했던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 되기까지 한 계절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안다. 좋은 대화는 상황을 바꾸고, 나에게 맞는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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