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있는 내 책상 위에는 탁상 달력이 하나 있다. 일 년 열두달을 다 넘기고 나면 차례로 '출장중, 식사중, 부재중' 글자가 나타난다. 그 글자들을 보면서 딱 필요한 글자들만 모아뒀네- 싶었는데. 요즘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노는 중'.
코로나19로 연일 외출이 어렵다. 두 아이는 고맙게도 집 안에서만 여러 가지 놀이를 잘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하루종일을 놀고도 잘 시간이 되면 크게 한숨을 쉬어가며 우는 소리를 한다.
많이 못 놀았어~~
어찌나 아쉬워하는지 매일 잠들 시간이면 나오는 이 반응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너희 혹시 '못 놀았어' 의 뜻을 잘 모르는 거 아니니?" 되묻고 싶을 정도다. 같은 장소에 같은 놀잇감인데도 어쩜 저리 끝도 없이 놀이 아이디어가 샘솟을까. 자는 순간까지 아쉬워서 쉽사리 잠도 들지 못할만큼.
놀이가 몰입을 이끈다더니 그 말이 진짜라는 걸 쉴 새 없이 놀아재끼는 아이들을 보면서 실감하고 있다. 노는 아이들을 두고 설거지를 하다 문득 나는 내가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있구나...깨달았다.
남편에게 건낸 "어쩜 저리 끝도 없이 놀수 있을까?" 하는 말은 사실은 "나도 좀 놀고 싶어." 라는 뜻이라는 걸. 아이들의 "많이 못 놀았어." 하는 말에 속으로 '못 놀기는 엄마도 매한가지야' 라고 답하고 있다는 걸.
답답한 집을 뛰쳐나가 이리 저리 쏘다니며 놀고 싶다는 게 아니다. 놀이라는 게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해주고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더 하지 못해 늘 아쉬운 것이라 정의한다면 요즘의 나에게 논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하고 싶은 그것.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나의 놀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곧 초등학부모가 되는 옆 집 엄마는 어떻게 놀고 싶을까. 윗 집 언니는 아이들이 꽤 컸는데 잘 놀고 있을까.
나는 엄마들이 탁상 달력을 하나씩 가졌음 싶다. 월별 달력을 다 넘기고 나면 '노는 중'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탁상 달력.
그 글자가 활약하는 동안만큼은 오롯이 엄마의 노는 시간 혹은 '꿈이 자라는 시간'을 확보해 달라는 무언의 요구인 셈이다. 내일은 집에 있는 탁상 달력 맨 마지막 장에 이렇게 써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