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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Mar 25. 2020

나도 모르는 나의 날들로

어느 날인가, 자기소개를 해야했던 적이 있습니다. 말로 하기 전에 써 보자 싶었습니다. 무심히 써 내려간 종이에는 엄마, 아내, 워킹맘, 직장인...등의 글자가 스산하게 놓여있었습니다. '자기' 소개인데 '나'는 없는 소개인 것 같아 그 날은 결국 자기소개를 마무리짓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직장에서의 작은 성과에 기뻤던 며칠과 퇴근하고 들어서는 나를 세상 누구보다 따뜻한 품으로 맞아주는 아이들이 있는 대부분의 날들이 모여 내 인생은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때로 영혼의 허기짐이 극에 달했음을 느끼며 허겁지겁 책을 주문해 밤새 읽어제꼈습니다. 생활에 치여 글 한 줄 못보고 지나가는 날이 지속될때면 내 마음 속 연료창고에서 비상을 울려댔습니다. 그럴 때는 손에 잡히는대로 읽었습니다. 읽은 책을 또 읽기도 하고 짧은 이야기를 모아둔 잡지를 읽기도 했습니다. 읽어야 사는 여자. 그 당시의 저에게 별명을 붙이자면 저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직장 옆자리 동료가 기다리던 가방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고 했습니다. 뒷자리 신입은 보고서를 제 때 완성해서 무척 기쁘다고 했습니다. 박자를 맞춰 나도 기쁜 일을 말하고 싶었지만 '무척 기쁘다'라는 그 말이 그렇게나 생경하게 들린 적이 있었을까 싶게 어떤 일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기쁜 일 많아서 되게 좋다" 하고 말았습니다. 직장에서 싹싹하고 일 잘한다는 평으로 통하는 저였지만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은 허했던 그 때가 생각하면 늘 아리게 떠오릅니다.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 아이를 위한 휴직이었습니다. 아이도 학생은 처음, 저도 학부모는 처음이었던만큼 기분좋은 긴장 속에 무사히 1학기 마무리가 다가오던 어느 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한 숨 돌리는 마음으로 제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3년 전 다이어리를 펼쳐보게 됩니다. 차마 크게 적지도 못한, 작은 글씨로 쓰인 한 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블로그에 내 글을 쓰고싶다'그렇게나 읽어댔던 건 아마도 쓰고 싶어서였을까요.


그때만해도 나는 블로그에 적힌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이지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싶다는 저 글 한 줄에 이상하리만치 심장이 뛰었습니다. 누가볼새라 다이어리를 덮어버리고 책장 한 켠 깊숙이 넣어버렸던 그 때. 그 순간에도 저는 몰랐습니다. 그 한 줄이 나를 이끄는 동력이 될 줄은. 


우연히 자주 보던 블로거의 글에서 초보블로거를 위한 강의 공지를 보게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강의료를 입금하고 강의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강의를 듣게 되었고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맘대로 글을 적다보니 누가 볼까 무섭던 그 마음이 이제는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싶구나...!'



작가가 되고 싶은 내 마음을 확인했을 즈음, 저에게 다시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직장 13년, 두 아이의 엄마로 8년. 작가 선언 9일차. 그 날은 제가 새로 태어나는 날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제 날들이 기대되었습니다. 바로 6개월 전만해도 제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앞으로 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나의 소개에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날들로 D+0 !



나도 모르는 나의 날들이 기대됩니다. 

눈 앞의 시간이 지나가고 당신도 나도 모르는 우리의 날들이 어떤 모습으로 오고 있을지 나는 너무나 기대됩니다. 



당시 제작한 나의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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