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전주의자가 되었다.
아이가 생김과 동시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의 안전만을 바라게 되었다. 더불어 이 아이의 인생을 어느정도까지는 책임져야 할 나와 내 남편의 안전도 삶의 의무가 되었다.
나 스스로 위험한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았고 아이가 혹여나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내 모습은 엄마로서 당연하다 여겨졌다. '안전'을 통해 '안정'을 얻는 것. 그것이 당시 나의 지상 최대 과제였다.
어느 날 아침, 두 아이 유치원 등원에 나서는 참이었다. 둘째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첫째도 재밌겠다며 벌써 들떴다. 시간 여유가 있어 그러자고 하고서 내려가려는데 첫째가 말하기를
엄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세요.
누가 빨리 1층 가나 내기해요!
뭐라고? 너희끼리 내려가겠다고?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10층이 넘는 계단을 아이들끼리?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내 기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 그런데 첫째의 요구는 완강했다. 아침부터 아이를 울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마지못해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것은 안전제일주의 엄마에게 가혹한 도전이었다.
닫히는 문 사이로 싱글거리며 우당탕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할때까지 나는 실로 패닉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야 했다. 아니 패닉이었다. '애가 좀 우는 게 대수인가, 그냥 같이 따라갈걸. 무슨 일 있을 줄 알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하릴없이 숫자 1이 적힌 버튼만 마구 누를 뿐이었다.
'띵'
드디어 1층. 7살, 5살 아이들이 아무리 빨리 내려온들 엘리베이터보다 빠를 순 없다. 나는 내리자마자 도로 계단을 거슬러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계단씩 뛰어올라가다가 마침내 아이들과 맞닥뜨렸다.
"어, 엄마!" 아이들이 말했다. "엘리베이터 벌써 왔어요? 아~ 아쉬워~ 이길 수 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고 내 손이 없어도 잘 걸어나갔다. 아이들 손을 끌어 잡고 내려가다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인생의 한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는 걸.
아이는 나에게 과제를 주었고 나는 주저하며 응했다. 그것은 도전이었고 미칠듯이 불안했던 과정과 달리 결과는 'It's alright.' 빨간 불이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며 차를 몰았는데 예기치않게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는 느낌.
그 여정의 끝에 서 있는 성공이란 녀석은 나를 시험하겠지.
이렇게 하면 그만둘까? 저렇게 하면 지칠까? 나를 이리저리 재어가면서. 하지만 몰랐겠지? 어려운 과제일수록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나란 걸. 숨바꼭질도 좋고 미로도 좋다.
결국 찾아만 진다면.
결국 출구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나간다. 꾸역꾸역 길을 내며 걸어온 나에게 성공이 하는 말이 들린다.
"어라? 이만하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왔네?"
에라이 성공 너 다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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