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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Jun 11. 2021

미루지 않고 대충 해보려고요

알고보니 완벽주의자

내 인생의 미루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이렇게나 오래 생각해야 해? 생각의 시간이 길면 늘 흡족한 결과를 얻곤 했는데 오늘은 처참한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되어 처음 맡은 담임, 아이들과 1년 내내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그 첫 번째로 선택한 것은 아침글쓰기. 더도 말고 딱 3분만 써 보자. 눈치보지말고 거리낄 것 없이 3분 동안 펜 끝에 내 마음을 맡기는거다. 사춘기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3분 글쓰기에 쓸 노트는 반드시 내 손으로 골라주고 싶었다. 그것도 이쁜 걸로. 맘에 꼭 맞는 노트를 찾고 싶었다. 줄 없는 노트는 별로야, 이건 너무 작아. 이런 저런 이유로 적당한 노트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3월 첫 날 시작하려던 프로젝트는 4월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시작이라는 의미가 반쯤은 퇴색했다.


교생 시절에 이런 일도 있다. 한 달여의 시간을 함께 한 반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살던 지역이 아닌 곳에서 교생 실습을 한 탓에 그 지역 지리를 잘 몰랐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도 됐으련만 그 때만해도 인터넷쇼핑이 이만큼 활성화되지는 않았을 때다. 지내던 곳 근처에 제법 큰 문구점이 있었지만 왠지 그 문구점은 아이들이 많이 오고가는 곳이라 특별한 선물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오늘은 꼭 이 동네 탐방에 나서야지. 내일은 꼭 선물을 사러 나가야지. 차일피일 미루다 한 달여의 시간이 다 흘러가고 나는 허둥지둥 그 문구점에서 선물을 골랐다.  '마음 담은 선물'이고 싶었는데 그냥 '선물'이 되었다. 


내가 학생일 시절에는 좀 나았을까? 아니다. 나는 시험기간이 되면 늘 벼락치기를 하느라 3일을 잠을 못잤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평소에 공부를 좀 해두었으면 좋으련만 시험공부는 미루라고 있는 것임을 몸소 선보이다 시험기간이 임박해서야 날밤을 새어가며 공부했다. 몸이 정말 힘들었다. 어쨌든 시험은 잘 치고 싶으니 초인적인 힘으로 잠을 쫓아가며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쳤지만 시험 마지막날 친구들이 모두 후련한 기분을 만끽할 때 나는 집으로 곧장 와서 그야말로 후련할 정도로 잤다. 종종 엄마가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어볼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대체 '미루기'는 언제부터 나와 함께 내 인생을 살아온거지? 나는 왜 그런거지? 이건 좀 심하잖아!



요즘 나는 매일 3절씩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필사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얼마 전 만 1년을 꼬박 채운 장기 프로젝트다. 매월 1일에 시작해서 마지막 날까지 한 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면 그 달은 필사 성공이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하루에 3절씩이니 부담이 없다. 한 달 필사 성공은 무난해 보였다. 


열두 달 하고도 한 달을 더 필사를 해 오는 동안 내가 필사완주에 성공한 달은 과연 몇 달일까? 두 달? 세 달? 모두 아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한 달이다, 한 달! '밤에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은은한 불빛 아래 편안하게 써야지' 하고 밤까지 필사를 미루다 아이들과 잠들어 버려 놓친 날이 허다하다.  


나는 일생을 대충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쓰고보니 완벽주의자 아닌가! 허울 좋은 완벽주의자. 모든 상황이 맞춰지면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그러다 결국 대충만도 못한 결과가 주어진다.


눈 뜨자마자 필사노트를 열어 오늘치 필사를 하며 새로운 삶의 기준을 하나 세운다. 미루지 말고 대충하자! 그게 미루고 미루다 날림으로 하는 것 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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