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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Sep 02. 2020

누가 내 귀에 추 좀 달아줬으면

팔랑이지 않도록

"괜히 했어, 괜히 했어!"


최근 나는 거울을 볼 때면 꼬부라진 앞머리를 매만지며 늘 이 생각뿐이다. 끝만 살짝 말린 C컬의 앞머리를 유지하다 거의 S 자에 가까운 컬의 앞머리를 보고 있자니 안 어울리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마냥 불편하다. 


며칠 전, 긴 머리를 조금 자르고 정돈할 겸 미용실을 찾았다. 그 미용실은 대학생 시절부터 아이 엄마가 된 지금까지 근 십 년 넘게 내 머리를 만져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녀가 대형 미용실 체인점의 인턴으로 있을 때부터 1인미용실을 개업하기까지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다보니 이제는 서로 마음을 나눈 친구와 같다. 


"이번엔 머리 어떻게 할거에요?"

"저 그냥 늘 비슷하게 좀 다듬고 아래 C컬 넣고요. 전체적으로는 생머리 느낌으로 하려고요. 그게 관리하기도 편하고요."


디자이너 언니의 질문에 평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머리스타일을 말한다. 보통은 그녀도 내 의견에 거의 따라준다. 간간이 컬을 조금 더 넣어보자든지, 컷을 좀 다르게 해보자든지 디자이너로서 의견을 제시하지만 대개 그것은 내가 선호하는 기준을 넘지 않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OO씨, 그러지말고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 보면 어떨까요? 길이는 유지하되 레이어드를 많이 넣고 그 레이어드 컷 넣은 곳마다 컬을 넣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머리에 웨이브 펌 한 것 같은 효과를 줘 보는 거에요. 어때요?"


긴 머리에 웨이브라니~! 말만 들어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단어가 아닌가! 그 헤어스타일은 그야말로 모발이 가늘고 숱이 적당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그런데 그 긴 머리 웨이브를 나도 할 수 있다고? 


샤랄라~ 순간 꽃바람이 부는 기분이었다. 물론 정확히는 '긴 머리 웨이브 펌 한 것 같은 느낌'을 줘 보자는 것이지 실제 그 헤어스타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내가 맘에 들어하는 눈치인 것을 읽고 디자이너 언니는 예시 사진을 보여주었다. 긴 머리를 다양한 길이로 레이어드 컷하고 머리 끝에만 굵게 펌을 넣은 사진이었다. 이런 느낌을 낼 수 있는 머리라면 당장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할까요?" 


디자이너 언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언니는 내가 본 중 가장 훌륭한 헤어디자이너다. 원하는 헤어스타일 사진을 들고갔을 때 단 한번도 미용실 단골멘트인 "손님, 이 머리는 드라이한 거에요. 펌으로는 이렇게 안돼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진에 가장 가깝게 헤어스타일을 재현해 줘서 늘 감탄하곤 한다. 그런 언니였기에 나는 더욱 빠르게 수긍했다. 





샴푸, 컷, 중화 등 여러과정을 거쳐 나의 머리가 완성되었다. 실로 언니는 나의 숱많은 머리에 어떻게 요술을 부렸는지 굽이굽이 멋진 웨이브를 만들어 주었다. 그냥 풀고있으면 셋팅기로 만든 것처럼 탄탄한 컬이 내 머리끝에서 대롱거린다. 자꾸만 만져보게 되는 머리였다. 이제 살짝 말아둔 앞머리 롤을 풀 시간이었다. 


도로로로. 앞머리에 감겨있던 롯트가 풀려나가고 자연스레 이마를 덮는 앞머리가 내려......와야 하는데! 


응?

응?!


다시 봐도 내 앞머리 맞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순간 스쳐가는 장면.


"OO씨, 앞머리도 좀 웨이브 넣어야겠죠? 옆머리랑 밸런스 맞추려면?"


'아, 고민되네...앞머리에 컬 들어가면 좀 안 어울리던데...어쩌지?'


고민과는 달리 이미 나의 귀는 팔랑이고 있었다. 웨이브, 밸런스...귀에 쏙쏙 와서 꽂히는 단어들은 이미 나의 귀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 언니가 추천하는대로 해서 잘 안된 적은 없었잖아?'


"네, 좋아요!"


평소 무슨 일이 있어도 앞머리 스타일은 사수하는 편인데 이번만은 어쩐 일인지 '좋아요' 라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그렇게 말한 순간 나는 이미...이 순간을 예감했어야 했다. 역시 앞머리에 컬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후회하는 이 순간을!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데 헤어스타일이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막강하다. 외모는 80%가 머리빨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나는 그 말이 정말 딱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번에 나의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또 한번 증명해 냈다. 거울을 보면서 자꾸만 예전 헤어스타일을 그리워 하는 것을 보니.


긴 머리 웨이브는 그렇게 나의 앞머리에도 위용을 떨치며 자신의 권세를 드러냈다. 그렇게 꼬불거리지 않아도 되는데 앞머리는 한껏 S 라인을 뽐내고 있었다. 아...앞머리만큼은 소신을 지켰더라면. 팔랑이는 귀를 좀 잡았더라면! 앞머리 덕에 정작 뽐내야 할 옆머리마저 얌전히 있는 느낌이다. 


이건 확실해! 나의 생각대로 해야 해!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는 누군가 제발 내 귀에 무거운 추 좀 달아주면 좋겠다. 쓸데없이 팔랑거리지 않도록!




[Photo by Alli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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