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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Sep 08. 2020

독후감을 쓸 줄 몰랐네

그렇게도 쓸 수 있구나

"엄마, 저 독후감 쓰는 대회에 나가보고 싶어요."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첫째가 말했다. 응? 독후감? 책 읽고 쓰는 그거 말인가?


일주일에 2번 가는 학교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첫째가 독후감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대회에 나가보고 싶단다. 독후감도 대회도 생각지도 않았던 거라 순간 나는 막막했다.


"꼭 오늘해야 해?"

"네, 오늘 하고 싶어요."


아이의 '하고 싶다' 소리를 들으면 책으로 육아를 배운 나는 한없이 약해진다. 대부분의 육아서에서는 무엇이 되었든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그 때가 교육의 적기라며 그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내 마음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무시할 것인가, 들어줄 것인가. 햄릿의 그것보다 더한 고민이다. 퇴근 후의 쉬고 싶은 무의식과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엄마, 빨리요~" 아이의 한 마디가 더해졌다. 무의식이 백기를 드는 순간이다.


자, 독후감은 어차피 아이가 쓰는 것인데 문제는 대회다. 자신이 쓴 독후감으로 꼭 대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아이. 지역 대회 소식을 뒤져본다.


아! 있다, 있어! 마감이 내일까지인 어린이 독후감대회가 있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도 아니고 찾으니 대회가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대회 상세 안내 사항을 읽으니 원고지에 자필 작성이란다. 이럴수가. 원고지라니. 대체 언제적 원고지란 말인가. 원고지 사용법도 가물가물한데.


원고지를 출력할 수도 있지만 문구점에 가서 사서 하는 게 제대로일 것 같았다. 500원을 주고 원고지를 사 와서 아이에게 읽고 재미났던 책을 골라 독후감을 써 보라고 했다. 문득 궁금해져서 내가 물었다.


"독후감이 뭔 줄 알아?"

"책 읽고 느낀 점 이야기 하는 거 아니에요?"


뭐, 그렇지.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닌데. 더 길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맞다고 하고 원하는 대로 써 보라고 했다. 원고지를 열 칸 노트라고 생각하고 맞춤법은 가능한 신경쓰라고 당부했다. 갑작스레 참가하게 된 대회인데 무언가를 기대하는 걸까. 맞춤법 운운하는 내 모습이 우스워 속으로 웃었다.





아이에게 원고지를 던져주고 저녁밥을 준비하러 주방으로 가서 한참 후. 아이가 원고지를 들고 나와 다 썼다며 읽어보라고 한다. 아마 재밌어서 웃을거라며. 재미있을 거라던 이야기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실은 웃으며 읽는 와중에도 맞춤법 틀린 것, 중언부언 한 것 등 고치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 읽고 나서는 칭찬보다 고쳐쓰기에 대해 먼저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눌렀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꼭 묻고 싶어서 아랫입술을 몇 번을 짓이기다 결국 입을 열었다.


"되게 재밌다! 그런데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지우개 똥이 선생님의 울보 도장을 넘어뜨려서 없앤다는 내용 아니야? 그거에 대한 이야기는 왜 없어?" 이럴거면 재밌다는 얘기는 뭐하러 갖다붙인건지 싶게 내 입에서 거의 타박에 가까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저는 그 얘기가 안 쓰고 싶었는데요? 독후감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거기 나오는 선생님께 아이들 마음을 알려주는 편지를 쓰고 싶었다고요."


헙.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글은 상대에게 들려주고픈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글을 쓸 때 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하마터면 독후감은 이러저러한 형식을 갖추어야 하고 책의 핵심내용을 주제삼아야 한다는 아주 그릇된 생각을 심어줄 뻔 했다. 이렇게 독후감을 쓸 수도 있구나...아이의 글을 몇 번이나 뒤적이며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독후감을 쓸 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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