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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900점 만들기

by 샤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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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알유

-아임파인땡큐

-아임파인투


한국인에게 가장 간단한 영어 대화를 만들어 보라고 해보자. 다수의 답이 저 세 문장일 것이다. (요즘은 아임파인투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때는 그랬다. 뭐...)


딱 세줄 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대화. 접속사, 전치사 등등 이것저것 주렁주렁 붙여서 상대에게 다다다다 쏘아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영어는 항상 어렵다.


영어와 한국인의 시험에 대한 욕망이 기묘하게 버무려진 것이 토익(TOEIC). 즉 국제실용영어능력시험 (Test Of English International Communication)이다. 간단한 실용영어, 광고지, 이력서, 사과문, 등등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영어로 제시한다. 이 글의 목적은? 언제까지 도착해야 하나요? 제임스가 다음 해야 할 일로 옳은 것은? 등에 대한 답을 적절히 골라 체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험 점수가 취업, 승진, 진학 등에 두루 사용되기 때문에 20-30대의 다수가 이 시험에 달라붙어 비나이다를 반복한다. 토익 고득점을 주세요. 제발요.


학생시절 3개월에 900점을 만들어 주겠다.라는 문구를 보고 데스크에 가서 ‘두 달내로 900 만들어야 하는데 안 되나요?’라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푸근하게 생긴 A학원 담당자는 열심히만 하시면 당연히 된다고 했다. 학원비를 결제하니 그다음은 교재비, 스터디비 등등 달라붙는 금액이 척척 올라갔다. 듣기 파일도 따로 구매해야 한다. 학생인데 지갑은 궁하다. 학원까지 항상 걸어 다녀야지.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강사는 월 수 금 저녁 두 시간 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두 시간 수업 중 한 시간을 학생들 정신무장에 할애했다. 어떤 수강생이 졸고 있다면 공개망신을 주며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일대기를 풀어놓는다. 매달 990점이 찍힌 토익 성적표를 보여주며 나도 노력하는데 너네는 무엇을 하느냐며 사람들의 뼈를 때렸다. 무려 수업시간의 절반이나. 그래도 학생들은 강사의 입담이 재밌기도 해서 수업에는 꾸준히 참석했던 것 같다.


강사가 말한 대로 매일 한 세트씩의 문제를 풀고 문제 하나하나 분석하고 오답체크했다. 듣기 영역(LC)은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말에 쉐도잉을 하며 입에 붙도록 연습했다.


-Where do you want to go?

-Do you know how to take it?

-What a difficult!


문장이 능숙하게 입에 붙기 시작하면서 살짝 연음도 넣어보고 외국인 성우 발음을 따라 해보려 노력했다. 이러다가 영어 천재가 되는 거 아니야?라는 기분 좋은 상상도 했다. RC 공부가 지루해지면 mp3파일을 재생하여 쉐도잉을 시작했다. 재잘거려도 눈치 주지 않는 카페에 앉아 수업시작 전까지 LC공부만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LC파일을 들었고 직접 대화상황을 상상하며 미국인스러운 제스처도 섞었다. 잠깐이나마 내 인생에서 영어가 재밌다고 느낀 순간인 것 같다.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복습을 했다. 반드시 외워야 하는 단어들을 조합한 괴상한 단어를 만들어 리드미컬하게 읊는 강사를 떠올렸다. 강사의 말도 쉐도잉 대상이었다. 강사는 영국에서 유학을 했고, 이어서 그곳에서 비즈니스도 했다며 영국억양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수업을 할 때에도 항상 영국억양. R발음에 매우 인색한, T발음을 강조하는 억양을 뱉었다. LC의 성패는 영국발음이라며. 그런데 강사는 미묘하게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를 구사했다. 화랑의 후예에 등장하는 황진사가 떠올랐다. 그날 수업 내용을 복기하면 비로소 나의 하루도 끝이 났다. 그리고 두 달의 노력 끝에 마음에 드는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요즘 영어로 만들어진 영상을 볼 때, 일부러 자막을 보지 않고 내용을 유추해 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웬걸… 하나도 안 들린다. 나 나름 고득점자 아니었나?! 언어는 확실히 계속 써야 최소한 유지되는 것이고, 쓰지 않으면 곧바로 곤두박질친다. 난 국제실용영어능력을 어떻게 인정을 받은 것일까? 슬프다. 영어를 원하는 세상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 겨우겨우 풀칠하는 수준이라니.


어찌 됐든 요즘은 반짝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영어점수가 아닌, 진짜 영어실력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져 토익 외에도 준비해야 하는 시험이 많아졌다. 준비 기간도 최소 6개월은 걸리는 것 같다. 점수 딸 생각하지 말고, 실력을 키우렴. 사회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미션을 주었다. 일단 열심히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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