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단 열흘간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4월 초입에는 벚꽃이라는 이름의 축제와 음악들이 우리나라를 뒤덮는다. 크리스마스시즌의 [나홀로집에]처럼 장범준의 [벚꽃엔딩]이 비공식 4월 테마곡이 될 정도였으니까.
이 시즌에는 야외에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벚꽃 자체가 이제 밖에서 마음껏 걸어도 돼. 라는 무언의 시작 신호 같다. 하늘에서 총성이 탕! 하고 울리면 벚꽃이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져 진정한 새해의 개막을 알리는 느낌이다. 오히려 구정보다는 이맘때쯤이 진짜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집돌이인 나도 벚꽃이 피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구경하러 나선다. 그런데 나에겐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코가 조금 간질간질하면서 재채기를 할랑 말랑 한다. 한번 재채기가 시작되면 발작을 일으키듯 쉴 새 없이 하게 된다. 간혹 재채기 소리가 귀여운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런류도 아니다. 흉통도 크고 목이 긴 편이라 공기가 인후두강을 울려 나오는 소리가 쩌렁쩌렁한 편이다. 그것을 하루종일 하고 있으면 머리가 멍멍하고 노래방에서 세네 시간 노래를 부른 기분이다. 듣는 사람도 쟤 왜 저래하며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나중에는 얼굴을 찌푸린다.
대학시절 하루는 알레르기 약 챙기는 것을 깜박했다. 그런데 수업을 듣는 중에 그 발작이 시작됐다. 얼굴로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지으며 재채기를 참아보려 애썼으나 한번 터진 재채기는 멈출 줄 몰랐다. 재채기가 재채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조용히 생리 현상을 참아보려 했지만 한 번씩 끊기는 수업에 교수님도 언짢았는지 나갔다가 재채기가 멈추면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날 집에 돌아오니 눈이 퉁퉁 부어있었고 목소리가 완전히 쉬었다. 그리고 격한 운동을 한 것 마냥 온몸이 축 늘어질 정도였다. (참고로 재채기를 할 때 우리 몸의 많은 근육들이 관여한다.)
재채기는 알레르기 반응의 일종이다. 우리 몸은 외부 물질(꽃가루 등)이 유입되면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그리고 얘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안돼!라고 판단하면 한 번은 봐준다. 단 한 번이다. 봐주는 대신 다음번엔 혼쭐을 내줄 준비를 차곡차곡한다. 즉 외부 물질(꽃가루 등)에게 옐로카드를 주는 셈이다. 이윽고 똑같은 물질이 다시 들어오게 되면 지난번에 당한 것들을 기억하여 모조리 대갚음을 한다. 재채기를 유도하여, 또는 눈물 꽃물이 계속 나게끔 해서 외부 물질을 밖으로 빼내든지, 혈관을 확장시켜 면역세포를 유입시켜 외부 물질을 잡아먹는다든지 - 얼굴이 붓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재채기를 할 때면 꽃가루가 옐로카드를 받았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내 몸은 꽃가루에게 한 번은 관용을 베풀었고, 눈치 없는 꽃가루가 또 내 몸에 들어와서 화를 돋우었구나. 그러지 말지. 내 몸은 열심히 꽃가루를 내 보내려고 몸을 쥐어짜기 시작하고, 또 괴로운 나는 알레르기 약을 하나 꺼내 삼킨다. 그렇게 까지 화낼 필욘 없다고 하며 내 몸을 달랜다. 꽃가루 내보내겠다고 발작을 하면 괜찮다고 달래고 다음날 또 울먹이며 난리 치면 또 한 번 달랜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약을 안 먹고 버티면 그냥 내 손해다. 어린아이 다루듯 해야 한다. 내게 봄은 그런 시즌이다.
그러다가 더 이상재채기가 없게 되면 봄이 지나감을 느낀다. 피부의 끈적함을 느끼기 전에 여름이 왔구나 생각한다. 올해도 그럴 것이고 내가 살아있는 한 재채기는 계절의 시작과 끝을 알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