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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를 바라보는 시선

by 샤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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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겨울 시즌을 앞둔 시점의 이야기다. 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재롱잔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중 촌극이 하이라이트였고, 그 주제는 크리스마스캐럴이었다. 크리스마스캐럴의 내용은 부자인 스크루지 영감이 개과천선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어린이들도 따라 할 수 있도록 간략히, 쉽게 각색하였다. 그리고 각각 배역을 배정하려 하는데, 누구도 스크루지 역할을 맡으려 하는 아이가 없었다. 주인공인데 하기 싫어? 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나쁜 사람이잖아요’


지금까지도 스크루지 영감은 나쁜 사람이다라는 인식은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다. 증명할 필요도 없는 공리처럼 그 영감은 돈만 많은 구두쇠, 돈에 인색한 천하의 불한당이다. 찰스디킨스의 원작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배웠던 것 같다.


후에 부자에 관한 책을 읽다가 스크루지 영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다시금 원작에 대한 내용을 살필 일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스크루지 영감도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고, 어릴 적 곤궁에 빠져 살다가 스스로 현실을 극복하고자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부의 성장기에는 사람들에게 박하게 굴었다. 하지만 친구 말리의 유령이 그를 찾으며 개과천선을 하여 착한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그는 천성도 착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저 환경이 그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나는 작가가 당시 부자들을 보는 시선을 스크루지 영감에 투영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부리고 등 처먹고 괴롭히기 위해선 일단 돈이 많아야 하니까. 돈이 많은 사람은 부자니까. 성경에서도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다도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놀부는 흥부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부자는 왜 항상 나쁜 사람이었을까? 부를 많이 가졌다는 것이 부러워서? 부자들은 눈에 안 보이는 가치를 멀리한다고 생각해서?


이유야 어쨌든 이제 부자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뀐 것 같다.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 빌게이츠, 이재용을 형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그들의 저서나 자서전이 나오면 밑줄을 치며 부자의 사고방식이라며 내 것으로 체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부자에 대한 은근한 열등감은 이제 없다. 나는 당신보다 훨씬 열등하며, 당신은 나의 워너비라는 것을 대놓고 인정한다. 이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다.


부자들은 아무런 변화 없이 이러한 변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인정받는 부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처세술을 기민하게 갈고닦는다. 스크루지 영감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존경받기 위해. 물론 애초에 훌륭한 부자들도 너무 많다. 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이 부를 끌어당겼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부자를 너무 오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부자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쨌든 부자는 부자라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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