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려동물 일대기

by 샤토디


a0b02c79872e4886bea8e9ccb974113a.jpg

어제는 어떤 할머니가 약국에 그레이푸들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국장님은 쟤가 우리 약국에 들르는 강아지들 중에 제일 이쁘다고 하셨다. 털이 북슬북슬한데 단정하게 미용을 해서 매끈해 보였다.


“만져봐도 될까요?”


할머니는 강아지가 아주 순해서 괜찮다고 했다. 얘가 너무 똑똑하고 털도 안 빠져서 더 사랑스럽다고 한다. 푸들은 태어나서 처음 만져봤다. 털도 안 빠지니 억세고 수세미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이는 내 손끝을 응시하면서 자기를 이뻐해 줄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손길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분명 ‘이놈의 인기…’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어릴 적 윤신근 수의사의 애견 대백과사전을 끼고 살았고, 학교 앞에서 병아리장수가 자리를 펴는 날이면 뒤도 생각하지 않고 냉큼 집어오기 일쑤였다.


d23ed7c34d2d78b5af0050c5302e04e9c8bc048a-1200x700.jpg

본격적인 입양의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강아지를 사달라고 매일 떼를 쓰는 통에 요크셔테리어를 입양했다. 아버지와 청계천 애견샵에서 데려왔는데 데려오고 3일 뒤 홍역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며칠 만에 세상을 떴다.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학년때 요크셔테리어를 다른 애견샵에서 입양했다. 불운의 연속이다. 이번에는 장염으로 보냈다. 왠지 그때는 울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애견샵에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이듬해 6학년이 되었고 좋아했던 친구가 시츄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츄를 분양하는 동물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서 입양한다면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동물병원을 돌며 '혹시 시츄 팔아요?' 라고 묻고 다녔다. 마침 시츄 분양을 대행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날부터 매일 그 병원에 찾았다. 케이지 안에 있던 시츄에게 내가 네 주인이(될 거)야.라는 신호를 눈빛으로 보냈다. 이윽고 나는 진짜 시츄의 주인이 되었다.


Cute-Shih-Tzu-puppy-in-the-park_sanjagrujic_Shutterstock.jpg

시츄는 좋은 짝을 만나서 아이도 셋을 낳았다. 하지만 5살 때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산책을 데리고 나갔는데 얘가 차에 뛰어들어 치었다고 한다.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하지만 끝이 아니다. 고3 때 ‘후르츠바스켓’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강아지는 나와 인연이 없으니 고양이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질 않아 다음 카페에 가입하여 분양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분양한다고 했다. 아메리칸 숏헤어와 코리안 숏헤어의 믹스묘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고 냉큼 데리고 왔다. 역시나 집안은 뒤집어졌다.


Orange-Tabby-Cat-Fascinating-Facts-About-Orange-Cats-HC-long.jpg

고양이는 영물이라 큰일 나. 엄마의 한소리. 고3이 정신이 있는 게냐 없는 게냐. 아빠의 한소리.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 고양이자리를 마련하여 정성껏 돌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와 나는 청춘을 함께했다. 진학, 취업, 연애…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본 고양이는 16년간 함께하고 좋은 곳으로 떠났다. 내 일상의 절반이 사라졌다. 공활했다. 또 결심했다.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은 대략 두 부류인 것 같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미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경험하여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어려운 사람. 또다시 충동적으로 동물을 집안에 들일까 봐 강아지카페, 고양이카페를 전전하며 마음을 달랬다. 요즈음은 유튜브에 동물 영상이 넘쳐나 적당히 랜선을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


그런데 그레이푸들의 감촉이 잊히지 않는다. 결심을 깨고 다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좋은 인연이 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자를 바라보는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