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워낙 조용한 성격 때문이었는지 속에서는 화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나 어릴 적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중 가장 황당한 것은 종종 내 글씨를 보고 화를 냈던 것이다.
나는 악필은 아니었다. 악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잘 읽히기야 한다면야 악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글씨도 비교적 잘 읽히는 글씨라 크게 지적받는 일은 없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는 동그라미와 직선을 곧고 길게만 쓰면 중간 이상은 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흔히 TV광고 한 컷의 초등학생 일기장에 나올법한 수준의 글씨체는 습득했던 것 같다.
문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지나며 중학교를 넘어가는 시점부터 여자 아이들의 글씨체가 두드러지게 이뻐진다는 것이었다. 연필이 아닌 펜으로 필기를 하면서 미끄러지는 촉감을 접한 친구들은 힘을 덜 들이고도 강약을 조절하며 이쁜 글씨를 쓸 수 있었다. 캘리그래피가 유행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별 내용 없는 말을 아주 세련되게 꾸며 쪽지에 담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쁜 글씨를 주고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나?
나날이 향상되는 친구들의 글씨를 보다 보니 중간 이상은 간다고 생각했던 내 글씨는 초라해 보였다. 게다가 나는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 펜 적응에 실패했다. 내 글씨는 항상 위쪽으로 향했다. 폰트크기 20에서 시작한 글씨는 점점 작아졌다. 그래서 문장 끝의 글자는 그 크기가 5쯤 되었던 것 같다. 연필로는 잘 그려졌던 동그라미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직선도 삐뚤빼뚤해졌다. 동네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아이스링크에서 진짜 스케이트를 타는 느낌과 비슷했던 것 같다. 나는 내 글씨를 보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열심히 쓰다가도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책에서 그 종이를 그대로 찢어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이런 행위를 대학교 때까지 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황당해서 웃음만 나오지만 그 당시 나는 이쁜 글씨가 써지지 않는 것을 두고 내 손목을 원망했다. 그런데 그때 문뜩 깨달은 것이 있다. 뭐라도 끄적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쁜 글씨를 얻기 위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다시 쓰기를 반복해서 인지 내 글씨는 더 이상 크게 거슬리진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펜을 들어 글씨를 쓰곤 한다. 공부를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일기를 쓸 때나 심지어 친구와 통화를 할 때나 유튜브를 볼 때에도 항상 펜을 들고 쓸데없는 내용까지 끄적인다. 하나하나 모이다 보면 내 일상의 기록이 되기도 하지만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나에게 평안함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리고 복잡하다면 펜을 들어보자. 제품 설명서도 괜찮고 인터넷 기사도 괜찮다. 그저 펜을 들고 종이에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