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친구가 카페를 개업하여 축하해 주고 오는 길 자전거 정차지에 내 자전거는 없었다. 내가 항상 세워두는 자전거 바람 넣는 기계 바로 옆 자리. 조금씩 눈동자가 커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 자전거 혹시 엄마가 타고 갔어?", "아니 나 오늘 너희 동네 안 갔는데" 그렇다 어머니도 아닌 것이다. 역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내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는 12분가량이지만 여름에는 그 짧은 거리도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새직장에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께 자전거 한대를 부탁드리고자 아침 식사자리에서 쫑알댔다. "아빠, 나 자전거 한대가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딱 집과 역만 오갈 목적으로 탈 거니까 좋은 것 필요 없었다. 말 그대로 막 타고 다닐 거라 중고 자전거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중고 자전거매장에서 7만 원짜리 자전거를 사다 주셨다. 그렇게 내 알톤 자전거와의 만남은 2018년에 시작되었다. 누군가로부터 길들여진 자전거이기에 새로 산 자전거보다 훨씬 좋았다.
어느 날 야간 근무를 하고 동이 튼 아침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갈 생각으로 피곤한 몸을 자전거 정차지로 이끌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나는 자전거의 야간 조명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누군가가 LED 야간 조명을 쏙 뜯어간 것이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는데 핸들에 붙은 야간 조명이 뜯겨간 자전거를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대한민국 민도 수준 최악이구나. 시대가 어느 땐데! 이것이 내 알톤 자전거의 첫 번째 하자였다. 그 뒤로 몇 년간 펑크 난 바퀴를 수 회, 안장을 여러 번 갈았다. 또한 기어는 수리가 안된다고 하여 하나의 단수로만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 거치대는 이미 녹이 슬고 헐거워져 자전거를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으로 치면 혈압, 당뇨, 고혈압 3종세트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자전거였다.
그래도 물건에도 정이 드는지 나는 내 자전거를 감히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건 아버지께서 손수 사다 주신 자전거였다. 이미 수리비용이 자전거 구매비용을 한참 넘었지만 그래도 오래 견뎌온 이 자전거가 익숙해서 좋았다. 저단으로 고정된 기어로 달리다 보면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초등학생의 자전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도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 자전거를 함함히 여겨 뒤쳐지는 속도를 내 저질 체력 탓으로 돌렸다. 난 고물이 된 내 자전거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다. 내 손때가 잔뜩 묻은 자전거. 한여름에도 걷다 지치지 않게 내 다리가 되어준 자전거. 무엇보다 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
그 자전거를 훔쳐가다니 핑 하고 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음날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장기주차 자전거를 수거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겉으로만 봐서는 아무도 가져갈 것 같지도 않은 고물 자전거라 구청에서도 그런 오해를 샀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거해 갔다면 어딘가에 있을 테니. 만약 구청에서 내 동의 없이 자물쇠를 끊어서 수거해 갔다고 한들 나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 줄 용의가 있었다. 내 자전거만 무사하다면. 하지만 구청도 범인은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결국 며칠간의 동네 수색에도 내 자전거를 찾을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키우던 고양이 나루가 집을 나갔을 때 어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마 나루는 이제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낼 거야" 그런데 3주가 지나 경비실 옆 풀숲에서 발견한 나루의 꼴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아마 길고양이들에게 엄청나게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의 동화 같은 위로가 원망스러웠다. 행복하리라 바랐던 나루의 수난을 진즉 알았다면 더 열심히 뛰어다니며 찾았을 텐데.
그러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내 자전거가 이미 제 모습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전거가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하게 달리길 바랄 수밖에 없다. 딱히 가져갈 부품도 없지만 잔혹하게 해체되어 다른 자전거의 부품이 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때 까지까지 달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행복하게 달렸으면 좋겠다. 내 알톤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