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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만나다

by 샤토디

거진 20년 만에 원수를 만났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거리가 50미터쯤 되었을까? 멀리서 짧은 머리스타일과 앞 광대가 튀어나온 얼굴형, 그리고 팔을 휘젓지 않는 특유의 걸음걸이의 실루엣을 보고 설마 녀석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저 비슷한 특징을 가진 ‘행인 A’인 줄로만 알았다. 40미터 앞에서는 설마 그 녀석인가? 의심하며 고개를 좌로 한번 갸우뚱, 30미터 앞에서는 우로 한번 더 갸우뚱했다. 녀석과의 거리는 이제 20미터. 확신이 들었다. 그래 너구나 나의 원수. 고개를 앞으로 쭉 빼고 동공에 힘을 주었다. 설마 20년 동안 저 스포츠머리 그대로야? 실로 그는 그러했다. 게임 캐릭터 가일의 헤어스타일. 10미터 앞에서는 그놈의 눈에서 뽑힌 굵고 기다란 실타래가 내 눈에 박혀 고정된 것처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었다. 만약 직장 내 복도 저 멀리서 애매한 관계의 누군가가 맞은편에서 다가온다면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정신없이 엄지를 까닥이는 시늉을 하며 상대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확보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직장이 아닌 이상 누가 길거리에서 그러한 ‘진도개 셋’모드로 거리를 활보할까. 그런데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길거리에서도 경계가 필요했다. 최소한 오늘만큼은 최고 경계 태세인 ‘진도개 하나’모드로 걸었어야 했다.


점점 다가오는 원수. 좀 그냥 지나가주면 안 되겠니?라는 마음의 소리와는 달리 그는 내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걸어왔다. 그 넓은 테헤란로가 외나무다리처럼 좁디좁게 느껴졌다. 곧 그와의 접촉이 있을 것 같다. 근 20년 만의 인사는 어떤 모습일까? 어린 시절 서로를 향해 퍼부었던 것처럼 원색적인 욕지거리를 쏟아낼까?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더 이상 유치한 말과 행동을 스스로 용인하진 않을 것이다. 이젠 성인이고 우리는 나이를 먹었으니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 녀석의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힌 게 보였다. 이것은 나이주름이 아니라 필경 웃는 것이다.


“요! 조장환 맞지?”


라며 녀석은 아는 체를 했다.

‘요!’ 라니. 나를, 너의 원수를 20년 만에 만나는 게 힙합의 추임새를 넣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아닐 텐데. 녀석도 나와 가까워지는 동안 많은 생각이 하늘과 땅 사이를 왔다 갔다 했을까? 50미터 밖에서 나는 녀석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이미 한참 전 녀석의 세계에서 사라졌다가 이제 막 얼굴을 드러낸 존재였을까. 아니면 녀석은 20년간 사회성이라는 기술을 습득하고 갈고닦아 철천지 원수였던 나에게 궁극의 필살기를 선보인 것일까? 그래서 ‘요!’라고 말한 것일까? 녀석의 생각이 궁금했다. 내 이름을 부른 것보다 그 ‘요!’라는 말 그게 무슨 뜻일까. 나를 만나 반갑다는 건지 놀랍다는 건지 혹은 20년 전에 놓친 사냥감을 다시 물었다는 건지.

“장환 오랜만이다. 뭐 하고 사냐?”

그가 말했다.

“그냥 직장 다니면서 남들하고 똑같이 살아 넌?”

“그러네 사는 게 다 똑같네 아직도 이 근처 살아?”

“응”


어떻게 말을 이어나갈지 몰랐다. 사실 이제 내 기억 속의 그는 분노, 복수심이라는 속성은 전부 사라진 지 오래다. 녀석을 얼굴을 떠올릴 때면 녀석의 이름과 그 옆에 큰 괄호가 자막처럼 떠올랐고 그 괄호 안에는 원수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원래 그 원수는 정말 싫은 놈을 뜻하는 원수(怨讐)였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가 그것을 군 최고지도자를 뜻하는 원수(元帥)라고 잘못 적어도 굳이 고쳐 넣을 만큼 감정적인 동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 네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든 별 다섯 개를 단 놈이든.

“야 내가 명함하나 줄게 너도 있으면 하나 줘”


녀석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나에게 한 장 건넸다. 유명한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여 년 전 나에게 작정하고 몹쓸 짓을 한 녀석의 이름. 더 이상 떠올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떠올리기도 싫었던 그 이름.

제법 친했던 우리.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녀석은 ‘김봄’이라는 가상의 이성을 만들어 나에게 이메일로 접근했다. 녀석의 지인이라는 콘셉트로. 김봄은 녀석으로부터 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호감을 보였다. 그러한 김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춘기였던 나의 마음은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나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했던 녀석. 몇 달 뒤 녀석은 정체를 밝혔다. 이메일 끝에 ‘내가 사실은 xx야’라고 얄궂게 적어놨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동안 모니터 앞에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녀석은 이후로도 공개적으로 나를 놀려댔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장대한 서사를 떠벌리며 주변 친구들로 하여금 한심한 놈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다이제가 세로로 들어갈 만큼 큰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젖히며 목젖이 달랑거리는 게 보일 정도로 크게 웃는 그 녀석. 그래 정말 나쁘고 얄미운 녀석. 나는 참다못해 욕을 뱉었고 녀석도 나에게 욕을 뱉었다. 찢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주먹을 움켜쥔 녀석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일절의 손실 없이 픽셀 하나하나 전부 저장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억을 지우고 다시 이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으며 명함을 건네는 모습을 다시 새겨 넣어야 할 것 같다.


“고마워”


라고 말하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명함 한 모서리가 살짝 접혀 있었다. 나는 명함이 없었기에 녀석의 휴대폰을 받아 전화번호를 눌렀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내 휴대폰에 열 한자리의 숫자가 나타났다. 녀석의 이름을 입력했다. 괄호 속의 '원수'는 입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연락해 가끔. 다음에 밥이나 먹자”


녀석이 말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여전히 팔을 크게 휘젓지 않는 걸음걸이였지만, 20년 전 기억 속 그 뒷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어깨가 조금 더 둥글게 말려 있었고, 발걸음도 예전만큼 성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테헤란로는 다시 넓어졌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의 한 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20년이라는 시간이 한순간에 접히고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20년 만에 다시 내 인생에 등장한 그 이름. 참 묘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헤어져도 계속 생각나고, 어떤 사람들은 매일 만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데, 녀석은 미워했던 기간만큼이나 오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웃음이 났다. ‘요!’라고 인사했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년 전 그 자존심 덩어리였던 녀석이 이제는 길거리에서 옛 친구, 아니 원수일지도 모르는 나에게 ‘요!’라며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넬 만큼 여유로워진 게 아닐까. 아니면 원래 그런 면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와 지갑을 열어 명함을 다시 꺼내 보았다. 반듯한 글씨로 인쇄된 녀석의 이름과 직책. 그 아래 적힌 이메일 주소를 보니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김봄’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나에게 접근했던 그 이메일 주소와는 전혀 다른 회사 도메인이었다. 우리는 정말 많이 변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여 한다고 해도 어색하게 표면적인 안부를 묻는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의 우연한 만남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으니까. 20년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무거운 무언가가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명함의 접힌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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