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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의 힘

by 샤토디

숙면에 어려움이 있어 이번 주부터 멜라토닌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첫날 복용했을 때 엄청난 졸음과 나른함이 온몸을 휘감더니 둘째 날부터는 조금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심리적 안정감은 낮에도 지속되었다. '이것이 멜라토닌의 힘인가?'라고 생각했다. 원체 차분한 내가 두 배는 더 차분해졌다고 느껴졌다.


이 정도의 평온함이라면 누가 시비를 건다 한들 네네하고 넘어갔을 것 같았다. 나름 이러한 안정모드를 즐기면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 같이 일하던 동료가 말했다.


"선생님 이번 주 내내 다운된 느낌이에요"


나는 속으로 엥?이라 생각했다. 그저 평온함을 즐기고 있었고 타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내 할 일에 몰두했을 뿐인데. 친한 사람 한둘 모였을 때 재잘거리는 내가 유독 조용하게 일만 하니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다운된 게 아니고 멜라토닌을 먹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 동료는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내가 다운된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기분이 다운될 특별한 일도 없었다. 멜라토닌의 힘이긴 하지만 그저 나는 잔잔하다 못해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료의 한마디에 '정말 내가 다운된 게 맞나?'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오후부터는 기분이 다운됐을 때처럼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기도 버거웠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원치 않았다. 약국으로 오는 전화를 받을 때도 목소리는 한없이 뭉개졌고 친절함은 온데간데없이 차갑게 응대했다. 아주 필사적으로 따뜻한 억양을 넣어보았지만 확실히 내가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료 말대로 내가 다운된 게 맞나 보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내가 다운된 게 맞다고 생각이 드니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환자 교육도 귀찮고 조제도 귀찮아졌으며 약품 배송 슈터 정리도 귀찮고 반납약 정리도 귀찮아졌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내가 받아줄 줄 알고 재잘대는 직원들도 오늘만큼은 조금 버거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운될 일이 없었다. 동료의 '선생님은 다운된 게 분명해요'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금세 다운된 것이다. 고작 그 한마디 때문에.


말 한마디가 내 일상에서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물며 내가 뱉은 한 마디도 다른 사람의 일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뱉는 한마디를 정말 무겁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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