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들을 때

by 샤토디

흑백요리사에 출전한 최강록 셰프는 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조림을 잘하지 못하면서 잘하는 척해왔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조림으로 시작하여 조림으로 끝나는 사람이 '저는 사실 조림을 잘 못해요'라고 말하면 그에게 많은 응원과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사람들은 그의 고백에 열광을 했다.


내가 얼핏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한다고 보이는 것들이 나의 가치가 되고 더 나아가 나의 정체성이며 나의 전부가 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나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나는 어느샌가 전문가 내지는 대가가 되어 있으며 그러한 지위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진짜 대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닌 대가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이다.


'쟤는 저런 저런 사람이래'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듣다 보면 실제와는 다름에도 그 이미지가 주는 분위기가 좋기에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든지, 겸손을 가장하여 손사래를 치더라도 격하게 부정하진 않는 등,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를 굳이 제 손으로 망가뜨리려 하지 않는다. 서양 격언에 '현자처럼 보이고 싶거든 입을 다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또한 지혜일까?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했었다. 또 그것을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먼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읽었던 책 내용에 내 생각을 약간 곁들어 그럴싸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의 표정 변화를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박식한 사람, 현명한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 나는 못 들은 척하면서도 내 주변에서 만들어지는 그 이미지를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빨리 신작을 해치워서 다독가의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어 했고 도저히 시간이 없다 싶을 때는 책의 요약본을 본다든지, 유튜브를 통해 내용을 얼추 파악하여 읽은 척하기도 했다. 내가 관심이 없는 책도 손을 댔어야 했다. 어느샌가 책을 좋아했던 나는 책 읽는 것이 숙제가 된 삶을 살고 있었다. 최강록 셰프가 말했던 조림을 잘하는 척을 했던 삶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최강록 셰프는 그러한 시절을 극복하여 대가의 경지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문턱에도 걸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지금 조금 달라진 것은 굳이 분량을 정해놓지 않고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 몇 권 만을 천천히 곱씹어보며 읽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로부터 책 추천을 받았을 때 있어 보이는 책을 추천해주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내가 재미있게 읽고 있는 B급 소설을 권하지도 않는다. 다만 상대에게 어떤 책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같이 서점에 가서 골라본다. 그렇게 고른 책이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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