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by 샤토디

파묘라는 영화가 개봉한 후 파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다. 본래 '묘를 파헤친다'라는 뜻으로 묏자리를 잘못 잡아 후손에게 화가 미치는 일이 있을 때 이장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과거의 숨겨진 행적을 파헤쳐 이를 재조명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떤 유명인의 과거를 파묘해 보니 이런저런 일이 있더라는 식이다. 게다가 좋은 내용이 아닌 당사자가 숨기고 싶은 내용을 파헤칠 때 그 단어를 쓴다.


매체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하나 기록해 둔다.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 사람이 이전에 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되면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자신의 말을 바꾸는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에 유명인은 고개를 숙이거나 당당하게 인정을 하거나 혹은 조작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유명인은 생채기를 입고 소위 말하는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혹은 어물쩍 넘어가거나 둘 중 하나다. 어찌 됐든 파묘 하나에 유명인은 무조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언행과 행동 때문에.


어느 날 내가 아주 옛날에 썼던 일기를 읽어보았다. 보니 내가 쓴 글임에도 낯선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지금보다 훨씬 성숙했을 리가 없기에 누구도 안 보는 일기장에서까지 약간의 가식을 더했을 만큼 미숙했을 것이다.) 한참 덜떨어져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아무튼 일기장을 통해 확인한 어릴 때의 나의 모습은 지금과는 너무 많이 달라 다소 이질감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일기장을 파묘했을 때 나는 과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평가받을지 궁금했다. 파묘의 의도가 공격적이라면 나는 충분히 그렇게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어리기도 했고 환경도 달랐으니까. 만약 뚝심 있고 성숙한 나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마음가짐이 있었다면 조금 더 멋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 시간 동안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바뀌고 생각도 많이 바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개인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너무도 많이 변한다. 그래서 말이 달라진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못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본인이 했던 말을 다 머릿속에 담아두고 사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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