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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파즈

by 샤토디


2010년 이후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해외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성장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찾는 덕후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더 신선하고 부드럽고 때로는 산미가 넘치고 고소하고 + 초코향이니 흙맛이니 (사실 난 잘 모르겠다) 고급 원두로 브랜딩을 한 카페들이 즐비하다.


동네 허름한 카페에 들어갔을 때 말끔한 복장과 매너를 갖춘 점장보다는 장발을 고무줄로 대충 묶고 손님이 와도 본 둥 마는 둥 하며 '오늘 커피는 이거다' 라며 툭 던져놓는 가게가 내 느낌엔 더 신선하다. 이러한 로컬 장인 맛집이 아니더라도 번화가나 커피거리에는 신선하고 독특한 맛과 향의 커피들이 많다.


맛과 향을 논하기엔 한참 모자라지만 평소에 마시던 커피랑 다른 느낌이 들면 입과 코가 쉴 새 없이 풍미를 기억하려 한다. 점장님한테 원두가 무엇인지 여쭌 뒤 스마트폰을 꺼내 꼭 다시 마셔야 할 원두로 저장해 둔다. 다른 곳에 갔을 때 똑같은 원두가 있다면 꼭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일정이 없는 주말엔 오전에 차를 끌고 커피를 마시러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사실 사전조사를 면밀히 해 두기보다는 여기 괜찮아 보이네? 싶은 곳을 생각해 두고 즉흥적으로 선택한다. 대부분 경관이 아름답거나 카페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곳을 고른다. 어찌어찌 도착한 카페에 자리를 하면 맛보다는 분위기에 취해 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점장과 가까운 위치라면 작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중 기억에 남는 카페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카페 파즈 업체등록 사진

남양주에 위치한 카페 파즈. 몇 년 전 정식 오픈 전에 방문하였다. SNS에서 입소문만 탔을 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지라 휑뎅그레하여 더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루프탑으로 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꼭대기로 향했는데, 아뿔싸 그날 비가 엄청 쏟아졌다. 몇 명 없는 사람들도 모두 실내석으로 자리했으나 나와 일행은 꿋꿋이 오픈석에 자리했다. 신기하게도 하늘이 금방 맑아졌다. 후다닥 루프탑으로 올라와 다시금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최상석에 앉았다.

카페 파즈 업체등록 사진


고속도로가 길게 뻗어 오가는 차들을 볼 수 있었고, 푸른빛이 가득한 산등성이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잔잔히 부는 바람 덕분에 여섯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카페 파즈 업체등록 사진

주인아주머니께선 오픈전 손님이라고 꽃차를 준비해 주셨다. 색이 빨갛고 노랗게 우러나왔으며 사실 커피보다는 꽃차가 더 인상 깊었다. 아주머니께서 꽃차를 너무 좋아하셔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꽃차가 이런 향이었구나. 우러나오는 담백하고 또렷한 색, 찻잔에 따를 때 옅게 퍼지는 향이 코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해졌다. 향에 취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꽃차가 가지는 향은 커피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차가 식기 전에 우리는 주전자에 우려낸 차를 다 비웠다. 그만큼 향과 맛에 취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커피가 모자란 게 아니다. 꾸덕하여 층이 높게 쌓인 아인슈페어와 라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일품메뉴라 원두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또 생각나는 맛이었다.


한량이라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이제 돌아가야 해라는 생각에 엉덩이를 이리저리 들썩이게, 십 분마다 시계를 확인하게 만드는 카페가 아니었다. 말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웠다. 2미터가 넘는 큰 곰인형에 푹 안긴 느낌의 카페.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때의 기분이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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