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주말 밤 화천으로 향했다. 오로라 구경을 위해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데 한반도에서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동호회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나도 슬쩍 숟가락을 얹어볼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향했다. 못 보면 어때? 오가면서 편의점에 들러 가락국수이나 먹고 오자 하는 마음에 설렜다. 창문도 활짝 열고 루프도 활짝 열어 살짝 서늘한 바람이 훅 하고 들어왔다. 자동차 창문을 열 때마다 미세먼지 앱을 열어 열어도 되는지 확인을 하는데 오늘만큼은 미세먼지가 많든 적든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춘천까지 가서 화천으로 올라가면 좋겠거니. 올림픽대로에 올랐다. 늦은 밤이었지만 대로에는 많은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있나. 저 사람들 중에 오로라를 보러 가는 사람이 있을까? 문이 빼꼼 열린 차 옆에 붙어 물어보고 싶었다. '오늘 오로라 보러 가세요?' 바람소리가 너무 거셌다. 소리를 질러도 못 들을 테지.
가평 휴게소에 들렀다. 다행히 파리바게뜨가 아직 운영 중이었다. 또 다행히 잣 샌드가 남아 있어서 커피와 함께 구매했다. 급할게 뭐 있으랴. 샌드를 오독오독 씹으며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휴게소를 거닐었다. L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걸으면서 뭐 먹는 건 예의가 아니래. 왜? 내가 물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 보면서 사람들이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잣 샌드를 한입 물었다. 그리고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코 끝에 고소한 잣 향이 남았다.
휴게소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설레는 표정이다. 당신들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멀리 한 가족들이 보인다. 아빠, 엄마, 그리고 딸 둘. 아이들은 휴게소를 좋아한다. 먹을 게 많으니까. 나를 본다면 아빠한테 잣 샌드를 사달라고 할까? 저기엔 한 커플이 서 있다. 여자를 화장실로 보내고 남자는 담배를 꺼내 물고 있었다. 아주 깊게 빨아 들고 고개를 살짝 위로 들어 훅 내뱉는다.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퍼지더니 저 끝에선 희미해져 갔다. 어디로 갈까.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유튜브에서도 오로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극대기에 다다른 활동기에 플레어가 지구를 향했다고 한다. 빛은 반짝하지만 입자는 지구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로라는 예보가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오로라는 태양풍에 의해 분리된 여러 입자들에 의해 나타난다.) 광활한 우주로 향할 예정이었던 입자들은 고작 1억 5천만 킬로미터에 있는 작은 행성인 지구로 향한다. 2-3일에 걸쳐 열심히 날아왔다. 나는 그들을 마중하러 간다.
커피를 하나 더 샀다. 산 중턱까지 갈까 했지만 널리 하늘이 보이는 장소에 다다르자 차를 멈춰 세웠다. 잠시 한숨을 자고 일어났다. 차에서 내리니 주변에 사람들이 차를 세워 하늘을 보고 있다. 하늘이 알록달록했다. 넘실거리는 또렷한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능선 따라 영롱한 색의 오로라가 하늘을 뒤덮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속삭이며 오로라를 구경했다. 벌레소리도 개구리소리도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우주의 밤 인사를 온몸을 크게 펼쳐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우주의 인사를 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마음에 기억을 간직하고, 일부는 다시 인사를 마중하러 다른 곳으로 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