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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비만의 짝사랑과 다이어트 1

by 샤토디

나는 어릴 때 비만아였다.


살을 빼야겠다고 다짐을 하더라도 패스트푸드의 달콤함에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운동을 하더라도 기초체력이 없다 보니 조금 뛰다가 드러눕곤 했다. 그리고는 다시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어린애가 결심해 봤자였다


그나마 남녀공학인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통뚱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라 여자 아이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했다. 짝사랑했던 여자애가 살찐 사람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다음끼니를 줄인다든지, 드러누울 때까지 운동장을 뛴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살찐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애는 그냥 내가 싫은 거였다. 소위 잘 나가는 남자애들과 어울리며 나를 돼지라고 놀렸다.


중학교 졸업 후 남고에 진학했다. 이성의 시선 같은 제어기가 없었다. 청소년기 남자에겐 절제란 없었다. 공부하는 애들은 잘 먹어야 한다는 차 떼고, 포 뗀 어른들의 한 마디만 믿고 입에 잔뜩 쑤셔 넣기 시작했다. 좋은 음식도 아니라 식욕을 더욱 자극하는 설탕과 기름이 범벅인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고 점심엔 식당에서 식판이 휘어질 정도로 밥을 펐다. 졸리면 먹고 배고프면 먹고 공부하기 싫으면 먹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무조건 빠진다 라는 일종의 다이어트 독트린이 있었다. 아무도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대해,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고기는 살이 찌니까 야채를 많이 먹으란다. (어떤 의사 선생님은 정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또 '학생이니 공부해야 해'라는 방패 아래 식단과 운동을 전부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먹고 또 먹었다. 공부하려면 먹어야 되니까.


대학생이 되었다. 키는 178cm, 몸무게는 120kg에 달했다. 비만 중에서도 초고도비만에 속했다. 사람들 눈을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내성적이 되었다. 한겨울에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땀을 닦기 위해 항상 휴지를 가지고 다녔다. 강의를 들을 때에도 멀찍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만 앉았다. 내 주변에는 결코 사람들이 앉지 않았다. 자리는 넓고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과의 벽이 점점 두꺼워지는 느낌이었다.


옷가게를 가더라도 점원들이 대놓고 무시하거나 불쾌하다는 기색을 보였다. 내가 살 수 있는 브랜드는 120 사이즈를 판매하는 아디다스뿐이었다.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사이즈만 보고 카드를 건네고 결제가 되면 죄인처럼 후다닥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비가 왔다. 내 옷도 다 젖고, 새로 산 옷도 다 젖었다. 삐죽삐죽 살이 튀어나온 게 하얀 면티 위로 적나라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삐져나온 살들을 다 도려내버리고 싶었다. 내 인생을 갉아먹는 살덩이들. 집에 돌아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돼지처럼 살다 죽는 건가.


겨울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과제를 하러 동사무소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침 다음주가 수능이라 자리가 없었다. 요즘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이 트렌드라던데 거기나 가볼까? 하고 동네스타벅스로 향했다.


한 알바생에게 말을 걸었다.




고도비만의 짝사랑과 다이어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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