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중부권 장마는 6월 29일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기에 매년 장마철이 기다려진다.
과거에는 장마로 인해 수해를 입는 사람들이 많았다. 홍수로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수재민 돕기를 독려하는 특보뉴스가 하루 종일 들려왔다. 유명인사, 연예인들이 수백에서 수천만 원씩 쾌척하며 TV에 얼굴을 비추었다. 기업 대표들도 모금활동과 구제활동에 적극 동참했다. 일반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TV에 적힌 ARS 자동모금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들의 곤경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도 여름이 되면 수재민들이 많이 발생했다. 우리 집은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서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조금만 내려가면 빗물이 발목을 적시기 시작하고, 홍수가 나는 날이면 허리춤까지 물에 잠기곤 했다. 고함치는 소리, 애들 울음소리, 구조대의 사이렌소리가 빗소리에 잠겼고 소리들이 웅웅대는 잡음으로 한데 합쳐져 기괴하리만치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비가 그치고 본격적인 정리작업이 시작될 무렵 우리 집은 너른 마당이 있었던 덕에 수재민들의 대피소가 되었다. 동네 노숙인들도 이때다 싶어 구호물자가 모이는 우리 집 마당으로 모였다.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준비하셨고, 상황이 일단락될 때까지 사람들이 마당에서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또한 큰 솥에다가 멸치와 감자를 넣고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그 덕에 나도 며칠 동안 수제비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비가 오면 감자 수제비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후 정부에서는 매년 대규모 치수 사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음도 많았지만 대한민국에서 수재민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 피해를 상당히 극복했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충분히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제 함께 나누는 고통은 없다. 만약 수재를 입는다면 그저 본인이 알아서 고독히 해결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내릴 때 특히나 외로운 느낌도 들고 사람들과 부대꼈던 옛날 생각이 나면서 미묘한 현기증과 알싸한 우울감도 따라온다.
그래도 비 오는 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