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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생활의 단점

by 샤토디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예전 수험생활을 할 때 입시학원 원장님이 공부시간을 늘리고 싶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부터 기르라고 하셨다. 확실히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공부로 환원되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러한 생활 모드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나름 규율 있게 사는 느낌이 들어 지금까지도 아침형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미라클 모닝이 한차례 유행처럼 훑고 지나갔을 때에는 너도나도 아침에 일어나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매체에서는 아침형 인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저녁형 인간을 두고 하루의 시작부터 실패한 사람들처럼 비추기 십상이었다. 아침형 인간이 선이라면 저녁형 인간이 악인 것처럼. 그러다 보니 아침형 인간들은 저녁형 인간들에 비해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우위에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고, 저녁형 인간들을 깔보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대책 없이 노는 백수들의 수면패턴과 저녁형 인간의 수면패턴이 비슷해서 은연중에 이미지가 오버랩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럼 대책 없이 노는 백수들은 무슨 잘못이기에 또 저녁형 인간과 갈라 치기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딱히 잘못은 없다. 사람은 그저 자기 그룹이 아니면 한데 묶어 편하게 엮기 좋아하니까. (저녁형 인간 및 저녁형 인간과 같은 수면패턴을 가진 사람들의 넓은 아량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지만 그럼 아침형 인간처럼 생활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단점도 있다. 헛소리를 늘어놓을 테니 재미로 한번 읽어주시면 좋겠다.


첫째, 낮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좌뇌와 우뇌의 활동 반경을 비율로 나타내긴 무리가 있지만 낮에 궁리했던 지극히 평범한 사고도 밤만 되면 희한한 아이디어와 뒤죽박죽이 되면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는 밝아서 그런지 눈에 뵈는 게 많아 잡생각이 덜한 느낌이다. 즉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연결되기 어렵다. 그래도 이건 사람마다 다르니 패스.


둘째, 해외 주요 굵직한 이벤트를 언제나 녹화본으로 봐야 한다. 해외 스포츠의 양대산맥은 아무래도 유럽과 북미다. 특히 유럽의 데이~이브닝경기는 우리나라 밤~새벽시간에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저녁형 인간들은 이러한 경기들을 자기 생활 속으로 녹아낼 수 있다. 아무리 고화질로 녹화된 경기라도 저화질의 라이브경기를 따라올 수 없다. 시간적 동시성이 주는 생동감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들이 생방송을 보겠다고 커피를 들이붓고 선잠을 잔다 하더라도 다음날 모든 바이오리듬이 엉망이 된다.


셋째, 세상 즐거운 것들의 유혹에 매번 맞서야 한다. 아침형 인간은 아침마다 해야 할 루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밤에 놀다가도 나 이제 집에 가야 돼, 게임을 하다가도 나 이제 자야 돼. 갈등과 아쉬움, 그리고 유혹 앞에 흔들린다. 그러나 저녁형 인간은 그럴 필요 없다. 후회 없이 놀고먹어도 괜찮다. 밤은 그저 생활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 낮에는 감성적인 활동을 할 시간이 없다. 애인과 달콤한 시간, 기념비적인 사건은 밤에 일어난다. 저녁을 먹고 손을 잡고 야행을 하든지 뭘 하든지 감정이 고조되고 서로에게 충만할 수 있는 시간은 밤뿐이다. 햇빛이 중천에 떠올라서 방긋방긋하며 쳐다보는데 무슨 진전이 있겠는가. 왜 로미오가 늦은 밤에 줄리엣의 창문에 돌을 던졌겠는가. 왜 몽룡은 늦은 밤에 춘향의 처소에 들어갔겠는가. 다 밤의 마법에 빠져서 걸려들어서 그렇다. 오랜만에 부모님이 생각나서, 아니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 때에도 보고 싶다는 말은 낮에 어울리지 않는다. 만나고 싶다는 말도 낮에 어울리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도 낮에 어울리지 않는다. 밤은 은밀하게 우리의 귀와 혀에 꿀을 발라놓는다. 저녁형 인간은 이런 꿀단지를 머리위에 이고 산다.


위에 열거한대로 아침형 인간들은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거 빼면 아침형 인간이 다 좋은 듯하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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