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단골 식당이 생기면 그 식당에서 어제는 찌개 오늘은 백반 내일은 비빔밥. 이런 식으로 돌려먹기를 한다. 적당한 가격과 적당한 맛과 양 적당한 소음정도면 나에겐 충분한 것 같다. 수험생 시절 자주 찾았던 김밥천국에서 한때 며칠 내내 매일 돈가스정식만 먹었다. 사장님은 돈가스만 먹으면 질리지 않냐고 물으셨다. 나는 돈가스보다 맛있는 게 어딨 냐고 씩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감격한 나머지 다음날부터 김밥을 한 줄씩 더 주셨다. 그 뒤로 거의 한 달간 돈가스만 먹었다. 까다롭지 않은 식성이 이럴 땐 좋다.
이전 직장에는 구내식당이 있어서 맛없다고 입을 쭉 내밀지언정 고민거리는 없었다. 구내식당을 포기하더라도 조금 걸음을 하다 보면 순간 먹고 싶은 게 눈에 비칠 정도로, 음식에는 자부심이 있다는 중국인과 프랑스인들도 눈이 돌아갈 만큼 식상권이 넓게 퍼진 동네 한가운데에 위치한 직장인지라 먹거리 걱정은 전혀 없었다. 물론 내가 선택은 동행한 사람들의 몫이었지만. 그들도 선택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쌤 그냥 구내식당 가자' 하고 발길을 돌려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즐겼다.
직장을 옮긴 지금은 다시금 고민이 생겼다. 점심에 뭐 먹지?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 아니라 선택지가 전무해 생긴 고민이다. 같은 상가 내 혹은 옆단지 상가에도 식당이 없다. 밥을 먹으려면 필히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번갯불에 콩 튀기듯 밥을 마시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게 싫어서 편의점 음식과 친해져 볼까 문을 두드렸지만 일주일도 못 가 물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내 식성이 까다로왔던 게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결국 선택한 것은 점심 도시락 배달이었다. 매일 신선한 야채로 맛깔나게 구성된 샐러드를 먹었으나 점심 식비로 수십만 원씩 나가는 걸 생각하면 매일 호사를 누릴 수 없을 것 같다. 또다시 고민을 하게 된다.
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카린탑에서만 구할 수 있는 선두(senzu bean)가 있다. 선두 한 알만 먹으면 모든 부상과 기력이 회복된다. 어릴 적 드래곤볼을 보면서 선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했다. 그냥 밥 대신 적당히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작은 알약 같은 것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회사에 구내식당이 없는 직장인들은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