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이든 탕비실이 있고 탕비실에는 과자가 있다. 탕비실 문을 열었을 때 과자통이 텅 비어 있거나, 애매하게 손이 안 가는 과자만 남아 있다면 월급이 늦게 나오는 상황만큼 직장인들은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 밥을 먹어도 손이 가는 과자. 퇴근 전 하나씩 주워 먹는 과자. 집에 있으면 절대 안 먹을 과자인데도 탕비실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이 자꾸 가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안 먹으면 다른 사람이 먹을 것이고 그전에 내가 먹어 치워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해서일까? 인기 있는 과자는 채워 넣기 무섭게 동나기 마련이다. 인간 탐욕의 현장은 퇴근 무렵 탕비실의 문을 열 때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엔 탕비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그마한 과자 꾸러미가 있다. 자기가 먹은 이상으로 항상 채워 넣는 분위기라 인간 탐욕의 현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과자 꾸러미가 내 뱃살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밥 먹기 전에 과자를 먹으면 인슐린이 폭발하니까, 밥 먹고 나서 과자를 먹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내 멋대로 해석했다. 밥 먹고 나서 과자를 먹으면 살이 덜 찌고, 더 나아가 밥 먹고 나서 과자를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다. 매일 배달 도시락 한 그릇을 비우고 종류별로 과자를 입에 넣다 보니 어느새 몸이 부해진 것을 느꼈고, 거울 속에 비친 D컷 체형에 다시금 놀라 5킬로를 뛰기를 반복했다. 어제는 달리기를 했으니 오늘은 좀 더 먹어도 되겠지? 오늘의 과자는 무엇일까? 나도 모르게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설탕과 밀가루의 연성체에 이성을 잃고 하나를 먹고, 두 개를 먹고, 두 개를 남기고 이윽고 하나만을 남겼다.
슬금슬금 나오는 배를 보며 이 배의 근원은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뚱뚱해진 지방세포 수천만 개는 참크래커, 또 수백만 개는 야채크래커, 그 나머지의 일부는 화이트하임, 후렌치파이, 오레오 등등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참크래커와 야채크래커다. 둘 다 맛없다고 손사래 치는 애들이지만 '우리는 맛없으니 괜찮아' 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과자가 맛이 없어봤자지. 참크래커도, 야채크래커도 계속 입에 넣다 보면 끝없이 손이 가게 된다. 그렇다 내 배는 참크래커와 야채크래커로 이루어져 있다. 걔네들이 내 몸 안에서 온갖 화학반응을 거친 후에 무사히 지방세포에 안착한 것이다.
오늘도 5킬로를 달리고 들어왔다. 참크래커, 야채크래커와 이별을 고하기 위해. 그냥 얌전히 빠져나가면 좋았잖아. 왜 꾸역꾸역 내 몸속으로 들어온 거야? 당분간은 매일 열심히 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