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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전직 유튜버

by 샤토디

나는 유튜버였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만 많지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지라 그냥 아는 것만 하자라는 생각으로 약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변비약을 왜 우유랑 먹으면 안 되는지, 타이레놀을 반으로 쪼개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얼굴이 하얘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나름 약에 대해 자신 있다고 생각해서 호기롭게 시작했다. 약학 정보 유튜브 채널들이 '이럴 땐 이런 걸 드세요'라는 심플한 공식을 던져주는 것이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럴 때 이런 걸 먹는지' 그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유튜브를 만들고자 했다.


꾸준함이 내 장점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한 번씩 알고리즘을 탈 때가 있으니 진득이 영상을 올리는 습관을 기르라는 것이 유튜버들의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렸다? 그래서 하루에 영상을 두세 개 만들 때도 있었고, 1일 1 영상 습관을 기르기 위해 영상 하나를 한 시간 이내로 만드는 나만의 요령을 쌓아나갔다. 첫 영상이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아 조회수 1000건이 넘었을 때는 쾌재를 불렀으며, 머릿속에서 백만 유튜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슈카월드, 잇섭, 우파푸른하늘 등등 그들과 합방을 하면 무슨 말을 꺼낼까? 내가 노잼이지만 한번 터지만 재미가 없지만은 않을 텐데. 옷도 사고 차도 사고 한 번도 사보지 않은 명품도 사보고 좋은 호텔을 예약해서 진탕 놀아보고, 남들 일할 때 해외 나가서 영상 찍으며 셀럽의 인생이 이것이다. 라며 소위 '스웩'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고 준비가 되었다. 이런 상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구글신은 날 선택할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두터운 파카를 뚫고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내 영상에 댓글을 달았을 때, 이것이 관심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조용한 관종인 나는 성심껏 댓글을 달았다. 댓글쓴이의 대댓글을 바랐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좋아요 하나에 목을 매기 시작했고, 조회수가 낮거나 좋아요가 없는 날에는 하루종일 우울했다. 다시. 구글신의 눈에 들기 위해선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얼른 제작하여 내 실책을 만회하려 했다. 그러다가 한 번 조회수가 오르면 방긋했다가도 떨어지면 땅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영상이 어때서. 왜 구글신은 나를 배신하는 거지?


알고리즘의 기회와 축복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나는 점점 조회수가 떨어지는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글신은 더 이상 불특정 다수에게 내 영상을 추천하지 않기 시작했다. 영상의 개수는 70개가 넘었으나 마지막 영상을 올리고 네 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의 조회수는 여전히 0이었다. 맙소사. 백만 유튜버는커녕 구독자 백명도 채우지 못하고 이렇게 몰락하는구나. 70여 명의 구독자들 중 내 친구도 있고, 지인도 있고, 내용을 전혀 알아먹지도 못했을 외국인도 있고. 그중 내 영상이 좋아서 내 채널을 구독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상을 넘기다가 터치 실수로 구독 버튼을 누른 게 아닐까? 내 채널이 망했다고 생각하니 더 처절하게 망해버려라 하는 생각에 내 채널을 스스로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슬펐다.


그러다가 영상을 모두 다 삭제했다. 무려 70여 개의 영상이었다. 컴퓨터 안에는 그 영상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인터넷 바다에서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영상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노력, 꿈, 희망이 모두 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 슈카형. 이 섭형.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유튜브를 접은 지 어느덧 2년의 시간이 지났다. 다시 유튜버를 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친구와 다시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유튜브는 장비에서 시작한다고 우리끼리 낄낄대며 장비 구비할 생각에 신이 났다. 또 주변에 조언을 구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이것저것 묻고 다녔다. 콘텐츠는 그렇게 짜고 영상을 이렇게 찍고 편집은 저렇게 하고... 하루종일 유튜브 영상을 찍을 생각에 하루가 즐거웠다. 어느덧 슈카형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공한 유튜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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