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일반인들이 마약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곳은 매스컴이다. 나도 그랬다. 유명인 누가 마약을 했고, 누가 구속이 되었고, 대마가 어쩌고, 히로뽕이 어쩌고… 일반인들에겐 매우 생소한 내용들이지만 최소한 절대 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 마약은 절대 악이고,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마약이 심심찮게 사용된다. 흔히 (절대 해서는 안될) 마약을 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행복감(Euphoria)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 병원에서 사용하는 마약의 용도는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한 것이다. 암환자나 신경계 이상환자, 수술을 마친 환자등은 극심한 통증을 쉽게 느낀다. 통증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동안 통증을 누르기 위한 많은 진통제들이 개발되었으나 여전히 효과가 가장 뛰어난 진통제는 합성마약이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마약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항상 양립하기 때문에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료용 마약을 사용하더라도 적절한 양을 사용하지 않으면 환자는 의존성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약물을 갈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병의원에서 마약을 다룰 때에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며 처방되는 모든 마약은 낱개단위, 일련번호로 관리된다. 만약 처방이 매우 부적절하거나, 약국에서 마약류를 분실했다면 말 그대로 마약법 위에서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약사로서 병원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 마약이다. 약사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철제 금고 안에 들어있는 30종이 넘는 마약류를 전부 다 센다. 한 알이라도 부족하면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수량을 전산수량과 맞추어야 한다. 만약 마약 수량이 맞지 않으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찰을 대동하여 CCTV 등을 모두 돌려보고 이송요원들의 마약이송바구니, 주머니들을 샅샅이 뒤진다. 그리고 병동의 간호사, 투약이력등을 확인하기도 하고 인수인계상의 착오가 없었는지 하나하나 따진다.
어느 주말 마약 한 알이 분실되었다. 당직 약사는 매우 당황하였고, 책임약사에게 전화를 하여 상황을 전달하였다. 서울 밖에서 주말을 즐기고 있던 책임약사는 바로 병원으로 돌아왔다. 조제실의 쓰레기통을 하나하나 헤집어 뒤져도 약이 나오지 않았다. 이송요원들의 바구니, 그리고 간호부의 약 보관함도 하나하나 확인했지만 약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윽고 경찰도 출동했다. 경찰은 CCTV를 확인하여 조제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추적했다. 약사는 틀림없이 약을 이송요원에게 전달해 주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두 시간이 넘는 수사 끝에 교대 전 이송요원의 주머니에서 마약이 발견되었다. 이송요원은 손이 모자라 약을 잠깐 주머니에 넣었는데 이를 간호부에 전달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고 했다. 그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위의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다. 매해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사건들도 더러 발생한다. 마약류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의료법이나 약사법이 아닌 마약법으로 관리되기에 그 무게감이 더 크다. 위반 시 마약사범이 된다. 나는 현재 마약류 관리자로서 출근, 퇴근 시 마약을 하나하나 세며 전산 수량과 맞는지 확인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전산수량과 실물수량이 정확히 맞으면 안도감에 한숨이 나오고, 하나라도 다른 경우 목구멍이 턱 막힌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