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감기약 품절이 장기화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약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국가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제조사들의 마진을 높여주어 생산을 독려하는 수준이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감기약을 만드는 원재료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그 당시 '타이레놀 8시간 이알서방정'이 처방전에 찍혀도 제형과 함량이 동일한 다른 회사 제품으로 조제하는 대체조제가 확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체조제를 쉽게 받아들였고, 어떤 사람들에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정부와 약사회에서 많은 홍보와 캠페인을 벌인 결과 대체조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긴 하였지만 여전히 오리지널 처방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감기약의 품절 때문에 대체조제가 확산되었고, 이로 인해 한숨 돌린 듯싶었는데 이제는 감기약뿐만 아니라 모든 의약품에 대해 품절이 확산되었다. 이번에는 코로나 때와는 다르게 수요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의 문제가 크다. 통상 의약품 제조사는 의약품에 들어가는 원재료를 구입하고, 일정 공정을 거쳐 제품을 만든다. 원재료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제품이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이다. 문제는 지난 2년간 뉴스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러시아가 이 원재료를 생산하는 가장 큰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원재료의 수출이 다방면으로 막힌 바람에 의약품뿐만 아니라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품목들의 시장 공급이 줄어들었다. 그 때문에 시장의 원재료값은 상승했고, 약값을 국가에서 통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조회사들이 더 이상 가격을 그에 맞추어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래서 일부는 생산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생산을 지속하더라도 원재료의 부족으로 간헐적으로 품절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주문하여 조제하는 입장으로서 의약품 품절 이슈가 떠오르면 정말 당황스럽다. 도매상을 닦달할 수도, 제조회사를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다른 차원에서라도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