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인데도 한낯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다. 다행히 내일부터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날씨가 시원해지는 것도 좋지만 나는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비 오는 날씨를 좋아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보통 사람들은 맑은 날씨를 더 좋아하니 나도 원래는 맑은 날씨를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맑은 날씨에 겪을 수 있는 어떤 불쾌한 기억, 또는 비 오는 날씨에 누릴 수 있었던 행복한 기억이 하나하나 쌓였을 것이다.
비 오는 날씨는 항상 흐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맑은 날에 대비되는 우울한 날, 슬픈 날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비 오는 날은 괜히 꾸물꾸물하고 가라앉는 느낌도 들고 배도 아프고 그래서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고 그런데 아닐까? 괜히 비 오는 날이 오해를 받는 것 같아 속상한 느낌도 든다.
가끔 하늘이 쨍쨍한데 비가 떨어지는 날을 떠올리면 그것 나름대로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것 같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 또는 여우비 내리는 날은 묘한 설렘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흐린 날을 싫어할 뿐 비 오는 날은 좋아하는 게 아닐까?
나는 비 오는 날 아침 석촌호수 걷는 것을 좋아한다. 비가 내려서. 그리고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날씨가 맑으면 바글바글한 이 호수가 산책로도 비 오는 날이면 한산해지며 빗소리만 고즈넉이 들린다. 특히 토양균이 뿜는 화학물질이 흙냄새 또는 비냄새라는 이름으로 코를 자극하면 마음이 어느 때보다 평온해진다. 이 역시 비가 주는 축복이라.
비가 와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습기운과 향. 아마 비 오는 날의 행복한 기억은 이게 아니었나 싶다. 이번 가을장마에는 최대한 많이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에 발이 묶인 사람들도 비가 주는 축복도 느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