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잠복결핵

by 샤토디

종합 검진을 받았다. 며칠 후 문자가 날아왔다. 잠복결핵검사결과 양성이니 진료를 보라는 내용이었다. 결핵균이 언제 어떻게 내 몸에 들어왔지? 아리송했다. 내 주변엔 결핵환자가 없는데. 아마 어느 결핵환자랑 이야기를 하다가 감염되었으리라.


진료예약을 하고 잠복결핵에 대해 꼼꼼히 찾아보았다. 잠복결핵은 왜 걸리고, 그냥 두면 어떻게 될 것이며,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약을 복용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등등. 소위 '후진국병'이라 불리는 결핵을 내가 걸리게 되다니 의아한 느낌도 들고 신기했다.


병은 곧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무증상'이라 명시된 잠복결핵임을 알고 난 뒤, 몸이 좀 아픈 것 같고 체력도 떨어진 것 같고 기침이 날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핵균 고놈 참 독하다는데 약을 먹어도 안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나도 칸트나 쇼팽처럼 각혈을 하며 기침을 내내 하다가 죽는 건가? 그분들은 인류의 보석과도 같지만 나는 뭘까? 남긴 게 없으면 자식이라도 남겼어야 했는데.


열심히 찾아본 결과 그냥 두어도 되지만 환자 밀접 근무자는 치료를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리팜핀이라는 약제와 이소니아지드라는 두 약제를 3개월간 먹어야 한단다. 진료를 볼 때도 의사 선생님은 별말씀 없이 차트에 약 두 개를 입력하시고 저장버튼을 눌렀다. "약에 대해선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꾸준히 드셔야 합니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끄덕였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향했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섯 알의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붉은 오렌지 빛깔의 소변색에 한 번 놀랐고 몰라보게 피부가 칙칙해진 것에 두 번 놀랐다. 소변색이 변한 것은 둘째 치고, 피부 흑화는 다른 결핵약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먹는 결핵약 조합도 다르지 않구나라는 것을 체험했다. 칙칙해진 피부, 유분이 올라오는 피부에 자신감도 점점 없어졌다. 병원에서 매번 결핵약을 처방받는 환자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그제사 환자들이 겪는 불편감을 나도 깨닫게 되었다.


평소 환자들에게 복약지도를 할 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읊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들이 느끼는 실제 느끼는 불편감의 실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소변색이 오렌지색이 되어서 양변기에서 소변을 봐야 한다든지, 호흡기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칙칙한 피부를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든지. 내가 경험하는 불편감은 내가 해왔던 복약지도와는 결이 너무나도 달랐다.


확실히 약도 먹어본 놈이 잘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면 내가 먹어본 약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수월했던 것 같다. 내가 먹어보지 않은 약은 아무리 달달 외워서 읊어준다고 해도 돌아서면 '정말 그런가?'라는 의구심이 남기 마련이다. 항상 그래왔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직접 결핵약을 먹어보고 부작용을 느껴보니 누구보다 이 약에 대해 잘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타벅스 e-프리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