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교통사고가 났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이 심해졌다. 미디어에서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에 사람들이 드러눕는 게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내가 겪어보니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가벼워 보이는 접촉 사고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다. 특히나 내가 당사자가 되니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동네 한의원을 찾아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20대 때 방문한 이후로 한의원은 처음이었다. 약간 긴장한 마음으로 한의원의 자동문 버튼을 눌러 발을 걸쳤다. 그래도 손님이니 친절히 맞이할 줄 알았으나 매우 심드렁해 보이는 직원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적사항을 기재하라며 종이와 펜을 건넸다. 나는 비어있는 부분을 빼곡히 적었다. 종이를 받아 든 직원은 내가 작성한 정보를 컴퓨터에 적기 시작하더니 턱으로 살짝 방향을 가리키며 저쪽에 앉아계시라고 했다. 역시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살짝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병원이 부산했기에 그러려니 하고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이윽고 침대를 안내받아 환복을 하고 한의사 선생님께 첫 진료를 받았다.
'기의 흐름이 흐트러져서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몸의 균형이... '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선생님은 척추 사진과 신경 사진, 엑스레이 사진 등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지극히 현대 의학적인 이야기를 하셨다. 속으로는 이게 맞나 싶었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틀림없는 말씀을 하시기에 그런가 보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은 추나치료와 침, 부황, 뜸 치료를 하실 거고요 통증이 심하시면 MRI도 찍으실 거예요. 한약도 열흘 치 먼저 나갈 거예요. 그리고 한방 치료는 한 번 했다고 효과가 바로 나타나진 않아요. 지속적으로 교정이 들어가는 시술이기 때문에 천천히 효과가 나타날 거예요. 시간 되시면 매일 오셔서 치료받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통증과 다리 저림 증상이 조금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일이 끝나면 돌아와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고 나설 땐 조금 괜찮아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침이면 어김없이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이 다시 나타났다. 매일 치료를 받아도 저림 증상은 나아지기는커녕 발 끝까지 이어졌고 지하철 역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불쾌한 감각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별로 효과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걸 계속 받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치료기간이 길다는 선생님의 말씀과 교통사고 후유증은 몇 년도 간다는 유튜버들의 간증을 믿고 치료를 계속 받기로 했다.
한의원에 방문할 때마다 선생님은 허리랑 다리는 좀 나아지셨냐고 물으셨다. 나는 전혀 효과를 전혀 못 보겠습니다.라고 솔직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답을 해야 치료의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몇 년간 한의사로서 선생님이 쌓아 올린 배움과 경험을 단 한마디로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은데 아침이 되면 여전히 저리고 아픕니다."
이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나도 환자와 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이 먹으라고 한 거 믿고 샀는데 효과 하나도 없던데요?'
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할 것 같았다. 상대가 죽자 살자 달려들면 나름 나만의 해석과 설명도 곁들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상대의 생각을 돌려놓는다 해도 환자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계기로 돌팔이가 된다. 처음부터 돌팔이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을까? 굳이 한의사 선생님에게 '당신은 돌팔이예요'라는 오해를 흘리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왜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와서 치료를 받는데?라는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도 크다. 나는 얼른 치료를 받고 사고 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퇴근 후 집에서 밥을 먹고 늘어지게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무려 한 시간 반이나 한의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치료로 인한 늦은 저녁식사를 기점으로 나의 달콤한 휴식도 짧아졌다. 만족스럽지 않은 치료 결과에 그저 짜증만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고를 낸 당사자와 한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유튜버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을 때까지 계속 치료받으세요"
역시 내가 당사자가 되니 속 편한 소리로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