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알고 지내며 데면데면하다가 연락이 툭 끊긴, 이제는 지인이라고 하기에도 다소 애매한 A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역시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 사람 B에게서 들었다. 나를 기억해서, 나를 지칭해서 부고를 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고인의 스마트폰에 있는 연락처를 쭉 훑던 중 내 이름이 나와서 고인의 사망을 전달할 겸 안부를 묻고 싶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모르는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길래 택배 기사님인 줄 알았는데 A의 전화번호로 걸려온 B의 목소리, 그리고 A가 죽었다는 내용, 너는 어떻게 지내는지 나에 대한 안부까지.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B의 요약을 듣는 내내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상대의 경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전적으로 시간이 알려주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 상대에 대한 감정적인 교류가 사라져 버려 경조사에 참석할지 말지를 고민할 정도의 관계. 오가는 시간과 교통비, 축의나 부조, 식비와 체력, 나의 여가시간까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돌리기 시작하는 관계라면 가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A도 나에겐 그런 거리였다. B에게는 A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우며, 찾아뵙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나 여건상 참석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으며, B는 나에게 부담 갖지 말고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을 남겼다.
발인을 마치고 한참 시간이 지나 B에게 연락이 왔다. 평일 저녁 B와 커피집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관계. 그래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닌 작정하고 만났기에 우리 둘 다 조금 더 상기된 얼굴로 마주할 수 있었다. A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어색한 공기가 내내 맴돌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약속한 듯 A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고, A에 대해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 각자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막에 와서는 A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B는 A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 말렸다고 했다. A의 남편은 술을 좋아했고 그런 날은 손버릇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했다. 눈이 퉁퉁 붓고 팔에 시퍼런 멍이 생긴 A는 누가 고아인 자신을 좋아해 주겠냐며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A는 남편의 폭력과 외도에 지쳐갔고 아이를 출산한 뒤 이혼을 했다. 전 남편은 A에게 양육비도 제 때 지급하지 않았다. A는 피아노 레슨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저 아이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다가 사기를 당해 길가에 나앉게 되자 며칠간 모텔을 돌며 지내다가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A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B는 그 정도면 죽음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어떻게 죽을 수 있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가 A의 입장이었어도 죽었을 거라 했다. 덤덤히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동조하는 B가 사뭇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 A는 조만간 떠날 것 같았어요. 어느 날 A가 너무 해맑은 표정으로 저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데 저는 되려 불안했어요. 체념한 자의 여유 같은 게 느껴져서 이대로 보내면 위험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날 우리 집에 와서 지내자고 했는데 A는 괜찮다며 돌아갔어요. 뒷모습이 이상했어요.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적극적으로 잡진 못했어요. 그게 후회돼요. 그런데 A는 지금이 더 편할 거예요. 이 상황에서 좋은 걸 논한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그게 좋은 선택이었을 거예요 A에게는.
죽기에 충분한 이유 같은 게 있을까. 누군가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와 내가 죽어보니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나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 줄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B의 말은 순리가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했다. 죽음을 말리는 것은 전적으로 주변 사람의 입장이고 그것 때문에 당사자를 힘든 구렁텅이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은 더 잔혹하다고 했다. 당사자에겐 더 편한 선택지가 있는데 사회는 일괄적으로 그 선택지를 금기시한다며.
B의 목울대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논쟁 아닌 논쟁이 될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나에게 있어서 A는 더 이상 지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애매한 관계가 되어버렸기에 어설픈 감정으로 죽음을 안타까워하기에는 B의 입장에선 하찮아 보일 것 같았다. 그저 훨씬 가까웠던 B의 말에 네네 그렇군요라고 답을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에너지를 훨씬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 제가 좀 말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데요 저도 많이 슬퍼요. 그런데 제가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A의 선택을 어떻게 막겠어요. 저는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 행동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아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B는 그렇게 A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