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습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법을 몰라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잘 맞았다. 천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퍽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해왔다. 누군가가 지금도 그때가 그립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인기강사는 아니었지만 소소한 마니아층이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나를 바라봐주는 것보다 몇 명의 광신자들이 더 좋았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프리랜서로서 능력만큼, 일 하는 만큼 벌어간다. 그래서 부지런하고 수강생이 많다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학원가의 강사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은근히 옆 교실에서 수업하는 강사의 험담을 한다든지, 학생들이 찾는 커뮤니티에서 학생인척 하며 자기를 띄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많이 정화되었다지만 그래도 자극적인 썰은 학생들 사이에서 또는 강사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것 같다. 수업을 듣는 학생수는 정해져 있고 본인의 수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그런데 위와 같은 전방위적인 비방이나 홍보도 어느 정도 규모가 커야 가능한 것이다. 나 같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강사는 그런 육탄전에 뛰어들 자금이 없다. 시간이 남으면 교안을 만들고 질의응답에 답하고, 광신자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시간을 더 갈아 넣을 뿐이다. 수강생이 없어도 묵묵하고 차분히 정도에 따라 일을 해서인지 몰라도 주변 강사들 사이에서는 무해한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격전지에서 지친 강사들의 속마음을 들어주는 데는 단연 일타였다.
그래서 꽤 최근까지 연락이 닿는 동료들도 있다.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료들은 정말 유능한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전직하거나 은퇴를 하고 새 삶을 살고 있다. 그중 신내림을 받은 한 동료 A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몇 년 전 광화문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았다. 사실 나는 이름부터 가물가물했다. 같이 일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최소한 성이라도 알면 김 선생님, 최 선생님 이렇게 부를 텐데 성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냥 선생님이라고 하자.
".. 선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셔요?"
성이 들릴 듯 말 듯 내가 물었다.
"저 신내림 받았어요"
흔히 강사가 집어준 문제가 수능에 출제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신내림 받았다, 계시를 받았다는 표현을 쓴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말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도 다음에 한 번 방문해 주세요"
라며 명함 한 장을 건네받았다. xx동자 김 oo. 점집이다. 아 맞다. 김 선생님.
"김 선생님도 건강하셔요. 한번 방문드리겠습니다"
"네 조 xx선생님도 건강하셔요 우리 곧 뵐 것 같아요"
김 선생님, 아니 xx동자는 내 이름석자 끝에 선생님을 붙인 여섯 글자를 똑똑히 말씀하셨다. 김 선생님은 기억력이 좋으신 건가? 아니면 옆에서 귀신이 내 이름을 알려주는 건가? 약간은 오싹했다. 게다가 곧 뵐 것 같다니 정말 신내림을 받으신 건가?
몇 달이 지나고 우리는 거짓말 같이 다시 만났다. 어느 주말 도곡동의 한 카페에 작업을 위해 찾았는데 김 선생님은 저만치 떨어진 자리에서 흐뭇하게 웃으시며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으시는 게 아닌가. 분명 강사시절 그 선생님이 맞는데 표정이나 분위기에 여유가 묻어 있었다. 김 선생님은 마시던 잔을 들고 와서 내 앞자리에 앉았다. 나도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던 터라 작업거리는 옆에 치워놓고 김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사실 제가 가르치던 학생이 죽었어요. 그게 저 때문이겠어요? 아마 다른 연유가 있었겠죠. 저도 다른 학생을 통해 들었어요. 학생이 죽은 건 당연히 안타깝죠. 고민 상담을 하면서 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모를까 그냥 수업만 듣는 학생이었어요. 눈에 띄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학생이 보이는 거예요. 저는 귀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냥 과로해서 머리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 학생의 모습은 더 선명해졌어요. 나중에는 입도 벙긋 거리길래 가까이서 들어보니 무슨 잡음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는 속으로 김 선생님 미쳤군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은 내 속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미친 게 아니에요. 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이과 중에 이과잖아요. 눈에 안 보이는 건 절대 믿지 않는 사람이란 거 기억나시려나... 그런데 헛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선명할 수 없었고, 잡음 같은 소리도 선명해지는 거예요. 이게 참 정신을 정말 돌아버리게 만들어요. 정신과를 찾아가도 스트레스 이야기만 하고 처방받은 약을 보니 조현병 치료제를 주더라고요. 전 정말 미치지 않았거든요. 그저 제 시야에 그 학생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릴 뿐이에요. 결국 찾아간 곳은 점집이었어요."
그 점집의 선녀님은 김 선생님이 내림굿을 받아야 살 수 있다고 했단다. 김 선생님은 지푸라기를 쥐는 심정으로 수백만 원짜리 내림굿을 받았으며 또 거짓말 같이 그 학생이 사라졌다고 한다. 정확히는 내림받은 귀신(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이 그 학생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그 길로 김 선생님은 접신을 하게 되었고 이 일을 업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 선생님.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요 가짜예요. 절대 그럴 리 없다지만 그럴 수도 있거든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말처럼 모순적인 말도 없어요. 자기를 부정할 때만 쓸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제가 무당이 될 거라 누가 생각했을까요. 저도 결국 자기를 부정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처럼요."
김 선생님이 무당이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과거에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추억 어린 인평을 했다. 정선생님은 어땠고, 원장님은 저쨌으며, 학생이랑 결혼을 하고 등등. 영락없는 김 선생님인데 등 뒤에 귀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강사가 천직이라 굳게 믿었고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건가 보다.
두 시간 정도의 수다가 끝난 뒤 김 선생님은 손을 내밀었다.
"조 선생님 우리는 절대로 만나기 어려울 거예요"
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내민 손을 잡고 흔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묻고 싶었지만 접어두었다. 그리고 김 선생님의 말처럼 그때가 정말 마지막이었다. 아직도 동자님으로서 삶을 살고 계신지 또는 다른 일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다. 절대로 만나기 어렵다니 이렇게 미련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