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간의 잠복결핵 치료를 끝냈다. 내 몸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을 결핵균을 흔들어 깨우듯, 매일 잽을 놓는 심정으로 약을 삼켰다. 3개월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 하얀색 이소니아지드 세 알, 갈색 리팜핀 두 알. 다섯 알의 항생제를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교과서에서 봤던 심각한 이상반응은 크게 없었다. 손이 저리거나 간 수치가 튀는 일도 없었고, 오렌지색 소변은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만 피부가 묘하게 어두워졌다는 게 문제였다. 건강하지 않은 흑갈빛 피부. 차라리 피부가 말끔해지고 손이 좀 저렸다면 더 나았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복용한 지 일주일쯤 지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얼굴에 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약의 색과 닮은, 불그스름하고 탁한 갈색. 인터넷에 '잠복결핵 치료 부작용'을 검색해도 피부 변화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곧 돌아오니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말뿐.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얼굴이라는 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부위니까.
결국 나는 쿠팡에서 미백 화장품을 잔뜩 주문했다. 효과가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약물 부작용을 또 다른 약으로 지우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해왔다. “치료가 끝나야 돌아올 겁니다. 그전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그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왔지만,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너무도 달랐다.
매일 밤 팩을 하고 비싼 앰플을 얼굴에 발랐다. 자다 일어나 거울을 보면 피부가 밝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빛에 민감해진 시각세포가 만들어낸 신기루였다. 현실은, 기상 후 10분쯤 지나면 어김없이 드러났다. “자, 이게 네 진짜 피부야. 꿈 깨.”
미백 톤업크림을 바르면 얼굴이 하얗게 떴고, 지우고 다시 바르기를 반복했다. 여성이었다면 ‘화장을 진하게 했네’라고 넘겼을 수도 있었겠지만, 남자의 얼굴에 붕 뜬 화장은 괜히 더 시선을 끌 것 같았다. 결국 백탁이 심하지 않은 선크림을 겨우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발라보았지만, 그조차도 가늠이 어려워 손에 덜어 바르고 씻어내길 수십 번 반복했다.
이따금 ‘동네 슈퍼 나갈 때도 화장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면, 과장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이야. 자신감이 무너진다는 표현으론 부족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 존재하지 않는 관객을 상상하고, 그 관객들의 시선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밝은 조명이 있는 롯데마트 대신 관객이 적은, 어둑한 시장의 상설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 울적한 마음으로 3개월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바람대로, 시간은 흘렀다.
치료를 끝낸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피부는 많이 돌아왔다. 어쩌면 원래대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전엔 이렇게까지 내 얼굴을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까. 피부에 대한 내 기준이 높아졌을 뿐일 수도 있다. 어떤 의사는 말한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밝은 피부는 속살의 색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속살과 얼굴의 색은 꽤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얼굴에 남은 감정의 흉터들이다.
회복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누군가가 “결핵약을 먹으면 피부가 어두워지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다.
"네,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질 겁니다. 다만 그 전까지는, 조금 인내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