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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

by 샤토디

월급이 들어오고 며칠 동안은 뿌듯한 느낌이 든다. 한 달 열심히 살았구나 라는 안도감과 행복감, 그리고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도 생긴다. 그런데 단 며칠간이다. 카드결제대금, 공과금, 대출금이 순서대로 빠져나가면 그제야 통장에 찍힌 숫자는 나에게 말한다. 저 깜찍하고 귀엽죠?


그 작지만 소중한 돈. 카드로 흥청망청 써도 다음 달의, 그다음 달의 내가 갚아나갈 것을 알지만 그래도 행동의 제약이 생긴다. 우연히 네이버에 들어갔다가 괜찮아 보이는 옷을 보고 홈쇼핑에 따라 들어간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거금을 지출해야 하는 식당을 간다든지,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폰을 질러버리자 라는 마음으로 애플스토어에 찾아가는 등의 행동은 제어할 수 있다. 돈이 많다는 것은 힘이 세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돈이 적은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강한 힘을 가진다.


그렇지만 큰돈을 써야 할 때에는 할부를 할 수밖에 없다. 무이자 할부가 가능한 카드를 골라 최대 할부기간을 설정하여 긁는다. 카드 대금을 갚아나가는 동안은 절대 건강해야 하고 아프면 안 된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는 내가 큰돈을 썼다는 것을 잊지 않는 기억력. 아직 젊어서 첫째, 둘째는 잘 챙기는 듯 하지만 셋째는 한 달도 안 되어 금방 사라진다. 이다음 달 원자 수준으로 작아진 통장의 숫자가 더 깜찍하고 귀여워졌냐고 물어올 때가 돼서야 부리나케 카드앱을 열고 사용내역을 확인한다. 아 맞네. 내가 이때 몹쓸 짓을 저질렀네.


부채란 것은 완전히 해소되기 전 까지는 마음속에서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청산하고 싶다. 그게 어떤 것이든. 내가 한 달 열심히 일한 대가로 번 돈으로 여태껏 사용한 카드대금을 싹 정리하고 싶다. 앱을 열어 다음 달 결제 예정금액을 확인했을 때 0원이 되어야 상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 할부란 놈은 다음 달 결제 예정금액을 고스란히 남겨 둔다. 때로는 내 한 달의 노동이 부정당한 기분도 든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나? 하지만 난 어제도 카드할부를 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폐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흩뿌려져 줍기 어려우니 하늘에서 내 계좌로 직접 쏴 주면 좋겠다.) 그럼 부채감(負債感)이 많이 줄어든 텐데.


부채감은 돈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도 비슷하다. 큰 빚을 진 사람에겐 고마운 느낌도 들지만 달덩이 같은 부채감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매번 만날 때마다, 또는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달덩이를 조금씩 잘라내지만 이제 끝났다는 마음이 생기긴 어렵다. 차라리 돈이라면 얼마 빌렸으니 이자까지 쳐서 얼마 갚으면 돼.라는 공식이 성립하지만 무형의 친절함과 배려, 도움은 그게 언제까지 나에게 부채감을 느끼게 할지 재단하기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러한 부채감은 나를 마냥 불편하게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따뜻한 기운도 서로 오고 간다. 그 기운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속에 줄곧 남는다. 부채지만 좋은 부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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